[김남희의 차이나 트렌드] 중국서 홈런 친 MLB, 강속구 맞은 휠라…K패션 세대교체
중국 1020에 인기 많았던 휠라, 작년 매출 첫 감소

지난달 중국 상하이 최대 쇼핑 거리 난징둥루의 웨후이광장 쇼핑몰 1~2층에 한국 패션 브랜드 MLB의 중화권 최대 규모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삼성전자가 2019년 연 중국 첫 플래그십 매장의 옆 건물이다. 올해 1월 봤을 때만 해도 개장 임박이라 쓰인 큰 천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어느덧 MLB의 중국 시장 점령을 위한 전진 기지로 자리 잡았다. MLB는 올해 1월 중국 쓰촨성 청두시에 중국 본토 900호점을 연 후, 이제 1000호점 개점을 코앞에 두고 있다.
MLB는 한국 패션 기업 F&F가 1997년 미국 프로야구 MLB(Major League Baseball)로부터 상표 사용권을 사들여 만든 의류 브랜드다. 그전까지 MLB 상표를 단 상품은 각 구단 야구장에서 파는 기념품 정도였다. 김창수 현F&F 회장이 MLB라는 미국 정통 야구 문화의 가치를 한국 패션 브랜드로 재창조했다. F&F가 미국 MLB에 상표 사용 대가로 로열티를 준다. 마침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서 뛰던 박찬호 선수가 한국에 야구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때라, MLB 구단 로고를 단 야구 모자와 옷은 젊은 층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MLB가 중국 본토에 진출한 건 2019년이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이 서울 시내 면세점의 MLB 매장을 싹쓸이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중국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 MLB는 직접 중국 시장으로 향했다. MLB는 2017년 홍콩에 첫 매장을 낸 후 중국 내 라이선스까지 확보해 2019년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 온라인 몰 티몰(톈마오)에 입점했다.
코로나 대유행기였던 2020년 중국 본토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다른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할 때 역으로 중국으로 들어간 것이다. MLB는 속도전을 폈다. 중국 내 매장 수를 급속도로 늘렸다. 중국에서 야구는 특히나 인기가 없는 스포츠인데, NY·LA 같은 큼지막한 도시 로고가 박힌 야구 모자와 운동화가 중국 1020 세대에 제대로 먹혔다. 야구를 내세우지 않고 아이돌이 입는 힙한 스트리트 패션으로 이미지를 잡았다.

전처럼 폭발적이진 않다고 하나, 중국 젊은 층 사이에 여전한 한류 인기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중국 진출 직후인 2020년엔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가수 현아를 글로벌 앰배서더(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현아는 5월 17일 기준, 샤오훙수 팔로어가 258만 명, 웨이보 팔로어가 193만 명에 달할 정도로 중국 내 인지도가 높다. 지난해 4월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에스파(aespa)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기용했다. 에스파의 웨이보 팔로어는 79만 명이다. 에스파가 지난해 7월 낸 미니 앨범 ‘걸스’는 발매 후 일주일간 142만여 장 판매됐는데, 절반가량인 67만 장을 중국 팬들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MLB는 늘 새롭고 재밌는 것을 찾는 중국 Z 세대의 소비 특성을 파악해 이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기민하게 내놨다. 트렌디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그 바탕에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 있다. 소셜미디어나 포털 사이트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지금 뜨는 트렌드와 앞으로 뜰 트렌드를 파악하고 상품 기획에 바로 반영한다고 한다. 품목별 맞춤 물량을 빠르게 생산해 매장에 푼다. 소셜미디어와 커머스 플랫폼에서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내세운 디지털 마케팅도 활발하다. 증권가에선 MLB가 패션 브랜드로서는 드물게 30% 안팎의 높은 영업 이익률을 낸 것도 이런 디지털 전환 전략 덕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창수 회장의 아들인 김승범 상무가 회사의 디지털 전환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범 상무는 2015년 중국 법인 사업부 총괄 팀장을 맡아 중국 관련 사업을 챙긴 적이 있다.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 방역 조치 시행으로 외출이 제약되고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MLB는 오히려 매장을 확대했다. 중국 내 MLB 매장 수는 2020년 말 70여 개에서 2021년 말 500개, 올해 1월 900개로 늘었고, 1000호점 돌파를 앞두고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 쇼핑몰을 다녀보면 확실히 MLB 매장이 많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MLB는 직영점보다는 대리점 위주로 출점했다. 지난해 3분기 말 MLB 중국 매장 중 대리점과 직영점 비율은 17:1 수준이었다. 대리점은 임차비와 인건비 등 매장 운영 비용을 적게 들이며 판매 네트워크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대리점은 본사가 가격이나 판매 방식 등을 철저히 통제하기가 어렵다.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대리점 위주 확장 방식엔 위험 부담이 있다.
2022년 MLB의 연간 해외 판매액은 1조2000억 원을 넘어섰다. 한국의 단일 패션 브랜드가 해외 판매액 1조 원을 넘긴 것은 처음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11월 MLB의 2022년 해외 판매액이 1조2000억 원을 돌파할 것이란 예상치를 발표하면서, 그중 중국 시장 매출을 1조1000억 원으로 제시했다. 중국 매출은 1년간 두 배로 늘었다.

반면 MLB보다 중국에 먼저 안착했던 휠라(FILA)는 성장세가 꺾였다. 두 브랜드 모두 중국 1020 세대를 겨냥한 스트리트·스포츠 패션 브랜드로 타깃 소비층이 꽤 겹친다. 휠라 중국 실적이 MLB 강속구에 맞아 떨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휠라는 현재 중국 최대 스포츠웨어 제조사 안타스포츠(Anta Sports)와 손잡고 중국 사업을 하고 있다. 안타스포츠가 2009년 휠라의 중국 상표 사용권과 경영권을 산 후 중국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휠라의 중국 합작 법인(풀프로스펙트) 지분은 휠라 한국 법인인 휠라코리아가 15%, 안타스포츠가 85%를 갖고 있다. 휠라코리아가 매년 중국 합작 법인 매출의 3%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구조다. 휠라는 웨이보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이탈리아 스포츠 패션 브랜드로 소개하며, 한국 브랜드인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휠라는 어글리 슈즈 스타일로 중국 젊은 층 사이에 인기를 누렸으나, 최근 몇 년간 브랜드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중국 내 휠라 연매출은 처음으로 감소했다. 안타스포츠가 공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휠라 중국 매출은 215억2000만 위안(약 4조82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 줄었다. 연매출이 줄어든 것은 처음이다. 휠라의 중국 매출 증가율은 최근 몇 년간 계속 낮아지고 있었다. 2019년 매출 증가율은 73.9%였으나, 2021년엔 25.1%에 그쳤다.
안타스포츠 전체 매출에서 휠라 비중도 낮아졌다. 안타스포츠는 산하에 안타·휠라·에이머스포츠·데상트·코오롱스포츠 등 브랜드와 합작 법인을 갖고 있다. 이 중 안타와 휠라 두 브랜드가 그룹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휠라가 그룹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49.1%에서 2021년 44.2%로 낮아졌다. 안타 매출 비중은 2020년 44.3%에서 2022년 51.7%로 높아졌다.

MLB 기세를 본 한국 기업들은 다시 중국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랜드는 SPA(패스트 패션) 브랜드 스파오(SPAO)의 중국 사업 전략을 재정비했다. 그동안 중국 시장용 제품을 별도로 만들어 팔던 방식을 버리고, 한국 스파오와 중국 스파오에서 동일 제품을 팔기로 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이미 지난달 29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 매장을 재개장하며 ‘NCT드림 캔디’ 컬렉션 제품 등을 선보였다. 이랜드는 2017년 한·중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으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 중이다. 2022년 중국 법인 매출은 1조 원 아래로 떨어졌다.
더네이쳐홀딩스 산하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지난달 베이징 한 쇼핑몰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의 중국 본토 1호점을 열었다. 홍콩과 대만에도 매장을 연달아 열며 중화권 시장 도전을 본격화했다. 더네이쳐홀딩스는 미국 다큐멘터리 방송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으로부터 상표 사용권을 사들여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F&F가 야구 리그인 MLB를 패션 사업으로 바꾼 것과 같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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