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프티와 지민의 빌보드, 차트라는 신기루 [K콘텐츠의 순간들]

김윤하 2023. 5. 19. 07: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차트에 관심이 많았다. 신인 피프티 피프티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BTS 지민의 ‘라이크 크레이지’는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가 급락했다.
4월13일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안 조용했던 전화통에 불이 붙었다. 범인은 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였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아직 활동 6개월도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신인이다. 전화를 건 이들의 질문은 한결같았다. 도대체 대형기획사의 차세대도, 유명 그룹의 여동생도 아닌 이들이 어떻게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이름을 올렸냐는 거였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피프티 피프티는 첫 EP 〈더 피프티(THE FIFTY)〉부터 화제의 곡 ‘큐피드(Cupid)’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했다. 그리움을 자극하는 달콤한 멜로디를 따뜻한 사운드 메이킹이 감싸 안았다. 도자캣이 낳고 뉴진스가 키운 케이팝 신 안의 새로운 흐름이 막 생기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운도 좋았다. 듣기 편하다고 모두가 쉽게 마음 줄 리 없는 세상에서 피프티 피프티는 음악으로 선택받았다. 2월24일 발매된 싱글에는 한국어 버전과 영어 가사로 부른 트윈 버전(Twin Ver.), 그리고 반주만 남긴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이 함께 수록되었다. 싱글 발매와 함께 노래의 특정 부분을 따 속도를 높여 즐기는, 일종의 음악 유희인 스페드 업(sped up) 버전도 공개했다. 놀이로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탄 노래는 요즘 인기곡 탄생의 정도(定道)를 걸었다. 4월1일 빌보드 핫 100 차트 100위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이들은 94위(2주 차), 85위(3주 차), 60위(4주 차), 50위(5주 차)로 점차 순위를 높였다. 피프티 피프티 이전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이름을 올린 케이팝 그룹은 원더걸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뉴진스 단 다섯 팀뿐이었다.

전화통에 불이 붙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훈훈함이 오가던 피프티 피프티 이슈와는 조금 다른 사안이었다. BTS 지민의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가 한국 솔로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시작은 밝았다. 여느 톱스타가 그렇듯 발매와 동시에 1위에 오른 노래의 영광은 그러나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다음 주 ‘라이크 크레이지’가 기록한 순위는 45위였다. 빌보드 역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한 1위 데뷔곡이라는 씁쓸한 기록도 함께 남았다. 음원과 시디 판매량이 급락한 것이 순위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다. 발매 첫 주 25만여 건을 기록한 이 노래의 판매량은 일주일 만에 1만5000건으로 떨어졌다.

투표 집계 방식 가장 잘 아는 케이팝 팬덤

팬들은 항의했다. 단언컨대, 케이팝 팬덤은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각종 차트와 순위, 투표 집계 방식을 가장 잘 아는 스페셜리스트다.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며 기존 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는, 혹시 차트 집계 방식을 사전 고지 없이 바꾼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빌보드 측은 딱히 뾰족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빌보드 차트는 물론이고 음악 프로그램 순위 그리고 우리가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그 어떤 유명 차트도 자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순위를 집계하는지 100%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법적인 문제도 아니니 주최 측이 결과를 100%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도 없다. 더불어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일종의 신비주의가 차트의 권위를 높이는 데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왔다는 걸.

BTS 지민의 솔로곡 ‘라이크 크레이지’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빅히트뮤직

차트의 권위. 앞선 두 사례를 보며 4월 내내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다. 숫자의 힘은 강했다. 케이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누구라도 말을 보탰다. 작은 기획사 출신인 신인 그룹이 어떻게 빌보드 핫 100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는지, 앞으로 어디까지 순위가 올라갈지, 지민 솔로는 어떻게 BTS 멤버 최초로 빌보드 1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 왜 그렇게 순위가 급락했는지, 팬덤의 단체행동을 중심으로 한 차트 교란에 문제는 없는지. 소란스러움을 가만히 지켜보다 문득, ‘사람들은 정말 차트에 관심이 많구나’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복잡한 머리가 단번에 맑아졌다. 정말이지, 아직도 차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

새삼 대단했다. 솔직히 이제 차트에 목매는 건 숫자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싶은 이해 당사자들뿐, 음악을 다양하고 깊게 듣는 사람에게 차트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계륵이 된 지 오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을 수 있는 수십, 수백 가지 길이 있는 세상에서 차트의 존재감은 지금 가장 화제가 되는 음악 카탈로그 정도로 바뀌었다. 높은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정량적 보상도, 21세기 들어 점차 소멸한 것으로 알려진 ‘대중’의 바로미터 구실도 잃었다. 차트를 좌지우지하는 대형 팬덤에 대한 비평이 ‘차트 교란’에 멈춘 현실도 답답했다. 팬덤의 단체행동이 차트를 움직인 건 어제오늘 일도 아니며 케이팝만의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대형 음반사와 방송사가 은밀하게 자행해온 일들의 양지화이자 권력 이양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다각도로 분석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건 차트를 절대 기준이자 절대 선으로 여기는 습속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다. 우선 인정부터 하자. 이제 차트의 권위를 말하는 건 차트가 믿음·소망·사랑이던 시대에 음악을 들어온 사람들뿐이다. 역사와 전통을 모조리 내다 버리자는 말이 아니다. 시선을 돌려보자. 앨범보다 플레이리스트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아지고, 음악을 단순히 듣기보다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세상에서 음악 차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중 위에 객관으로 군림하던 절대 차트의 시대는 이제 가고 없다. 권위보다는 시류를, 의미보다 재미에 초점을 맞춘 음악 차트, 판매량이 아닌 음악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촘촘히 짚어주는 차트가 의미 있는 지표로서 차트의 명맥을 그나마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 먼 일이 아니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