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연인들은 4500년 전부터 키스를 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5. 1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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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 2500년 메소포타미아 점토판
불륜에 빠진 여성의 키스에 대해 묘사
고대 사회의 키스는 보편화된 행동
단순 포진 바이러스 전파에도 일조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키스의 역사가 4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왼쪽 사진은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기원 전 1800년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남녀가 벌거벗은 상태로 키스와 섹스를 나누는 모습을 묘사했다.
기원 전 1800년 무렵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남녀가 벌거벗은 상태로 키스와 섹스를 나누는 모습을 묘사했다./대영박물관

인간은 언제부터 키스를 했을까. 과학자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부터 연인 간의 키스가 보편화됐다는 증거를 찾았다. 키스 역사가 지금까지 기록보다 1000년은 더 올라간다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트로엘스 아르볼(Troels Arbøll) 교수와 영국 옥스퍼드대의 소피 라스무센(Sophie Rasmussen) 박사는 1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기원전 2500년 무렵 문헌에 나오듯 초기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키스가 보편화됐으며, 이로 인해 구순 포진과 같이 입으로 전달되는 전염병이 널리 퍼졌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 친밀감을 표현하는 키스는 시간과 지역에 관계없이 인간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연인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성적인 키스는 보편적인 문화로 여겨지지 않았다.

◇4500년 전 기록에 나타난 연인의 키스

지금까지는 기원전 1500년 인도에서 성적인 키스를 했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었다. 일부에서는 성적인 키스가 인도에서 전 세계로 퍼졌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이 키스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연구진은 고대 문명부터 키스가 여러 문화권에서 연인들이 친밀감을 나타내는 행위로 여겼으며, 특정 지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곳에서 보편화됐다고 밝혔다.

아르볼 박사는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존재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점토판에 쐐기 모양의 설형 문자로 글을 썼다”며 “이 점토판에는 키스가 연인 간의 낭만적인 친밀감의 일부로 간주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약 38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은 한 유부녀가 키스 후 불륜에 가까워진 상황을 묘사했다. 같은 시기의 다른 점토판에는 미혼 여성이 앞으로 남성과 키스,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구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따르면 결혼한 부부뿐 아니라 미혼자도 사랑에 빠졌을 때 키스를 욕망의 일부로 여겼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키스가 어느 한 지역에서만 퍼진 관습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여러 고대 문화권에서 보편화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보노보가 성적인 목적으로 키스를 한다는 점에서 인간 사회에서도 오래 전부터 키스가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오귀스트 로댕의 1901~1904년 작 '키스'. 연인 사이의 키스는 4500년 전 고대 문명에도 널리 퍼졌던 것으로 밝혀졌다./영국 테이트 미술관

◇고대 사회 전염병 전파에도 일조

고대 사회의 키스는 사람 사이에 타액을 옮겨 병원균 전파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은 대표적인 예로 입술 주변에 수포를 유발하는 단순 포진 바이러스 1형(HSV-1)이나 염증을 유발하는 디프테리아 박테리아를 들었다. 아르볼 박사는 “고대 의학 문헌에 나오는 질병인 부샤누(bu’shanu)가 입 주변이나 안쪽에 생겼다고 묘사됐다는 점에서 HSV-1 감염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에스토니아 과학자들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유럽에 퍼진 단순 포진 바이러스의 기원이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혔다. 당시 연구진은 기원전 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다양한 인간 유골에서 바이러스를 추출해 DNA를 해독했다. 그 전까지는 1925년 뉴욕에 살던 한 사람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지난해 분석한 시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나온 1500년 전 철기시대 성인 남성의 DNA였다. 연구진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나온 기원전 6~7세기의 여성 유골과 14세기 젊은 남성의 유골에서도 DNA를 추출했다. 1672년 프랑스군에 죽은 네덜란드 남성의 치아도 분석했다.

당시 연구에서 유럽에 퍼진 단순 포진 바이러스 1형은 인류의 조상이 나타나기도 전인 600만년 전부터 지구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다가 5000년 전에 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다른 종류를 압도하는 일이 일어났는데, 아마도 키스를 통한 전염이었을 것이라고 당시 연구진은 밝혔다. 이는 1세기 티베리우스 황제가 로마에서 구순 포진이 만연해 키스를 금지시켰다는 기록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세기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네덜란드인의 치아. 과학자들은 치아 뿌리에서 단순 포진 바이러스의 DNA를 추출했다./Barbara Veselk

참고자료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f0512

Science Advances(2022), DOI: https://doi.org/10.1126/sciadv.abo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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