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략한다”…폴란드에 팔린 국산 전투기, EU서 추가 판매 가능할까 [박수찬의 軍]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내 방위산업계의 유럽 시장 공략이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전면전보다는 테러 위협이나 제3세계 분쟁 대응에 초점을 맞추며 군사력을 키우지 않았던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대대적인 군비 증강에 돌입했다.
이를 두고 폴란드에서의 성과가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올해 안에 FA-50 12대 폴란드 인도
FA-50 제작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폴란드와 계약한 48대 중 12대를 오는 8월부터 인도할 예정이다.
12대는 한국 공군 TA-50 블록2 전술입문훈련기와 같은 사양인 FA-50GF이다. GF는 구형 장비와 새로 도입할 무기 사이의 공백을 메운다는 ‘갭 필러(Gap Filler)’를 의미한다.
FA-50GF의 원형 격인 TA-50 블록2는 FA-50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체다. 실전에 필요한 전술을 익히기 위한 교육 기능을 강화했다.
현재 FA-50GF 1·2호기는 동체에 대한 페인트 작업이 이뤄졌다. 회색 바탕에 기체 하부를 짙은 회색으로 도색한 것이 특징이다. 주익과 수직 미익에는 폴란드 공군을 상징하는 붉은 색과 흰색 사각형으로 이뤄진 표식이 있다.
다음달 초 1호기 출고식을 실시한 후 기체를 분해, 폴란드로 이송한 뒤 현지에서 조립해 시험을 진행하고 8월 중순쯤 폴란드에 납품할 예정이다. 3~12호기 납품은 9~12월에 진행될 계획이다.
한국 공군과 KAI 주관으로 이뤄질 조종사 30여명과 정비사 100여명에 대한 교육은 올해 초부터 시작되어 내년 이후까지 진행된다.
현재 공군에는 폴란드 조종사 8명이 수탁교육을 받고 있다. 1차로 파견된 4명은 지난 2월 22일부터 7월 21일까지의 일정으로 교육이 진행중이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기본과정을 수료했으며, 제16전투비행단에서 전술집중훈련을 하고 있다.
2차로 파견된 4명에 대해선 지난 8일부터 10월 13일까지 일정으로 교육이 진행중이다. 현재 제1전투비행단에서 기본과정 교육을 받고 있다.
훈련 시뮬레이터와 전자식 교재 등은 올해부터 폴란드 측에 제공된다.
FA-50PL은 현재 운용중인 FA-50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성능을 지닌다. 이스라엘 엘타 EL/M-2032 기계식 레이더는 미국 레이시온 팬텀스트라이크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로 교체한다. 이를 통해 탐지 능력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장거리 위협 탐지와 추적 기능을 갖춘 공랭식 AESA 레이더인 팬텀스트라이크는 미국 정부로부터 KAI에 대한 상업판매 승인을 받았다.
레이시온은 경공격기와 헬기, 무인기 등에 지상 기반 타워를 포함한 광범위한 플랫폼용으로 설계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레이시온이 공개한 이미지 등으로 볼 때, FA-50을 의식했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타기팅 포드(TGP)와 레이저 유도폭탄을 비롯한 지상공격 능력도 추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러시아산 미그-29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폴란드는 현재 운용할 수 있는 전투기가 F-16 정도다.
공군 전력공백이 발생한 상황에서 F-16과 기체 특성이 매우 비슷한 FA-50은 F-35A가 폴란드 공군에 실전배치되기 전까진 F-16에 쏠린 임무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가동률과 기계적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KAI는 이같은 점에 주목, FA-50 수명주기 동안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현지 업체 등과 협력해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데도 집중한다. 오는 8월 26~27일 폴란드 라돔공항에서 열리는 라돔 에어쇼에 FA-50GF가 참가, 시범 비행과 지상전시를 하면서 성능을 현지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폭증하는 유럽 내 군비증강 수요와 관련, 한국의 무기는 이를 충족하는데 적합하다는 평가다.
한국 무기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방품질기준과 미군 규격을 고려해서 설계·제작됐다. 북한과의 전면전에 대비해 높은 수준의 가동률과 신뢰성, 군수지원능력도 확보하고 있다. 기술이전과 산업협력에 필요한 잠재력도 갖췄다.
FA-50과 더불어 현재 성능시험이 한창인 KF-21의 유럽 수출 기대가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은 군비증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수출 시장으로 유망하다는 평가다.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는 국산 기종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폴란드를 국산 전투기 유럽 수출 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폴란드 시장이라는 ‘집토끼’를 확실히 잡은 후, 이를 토대로 폴란드와 인접한 동유럽 시장이라는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폴란드와의 계약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속하고도 결함이 없는 납품은 잠재적 고객의 신뢰를 얻는 첫 단계다.
우선 계약에 명시된 기간 내에 FA-50GF와 FA-50PL을 차질없이 공급할 수 있도록 엄격한 품질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FA-50PL은 폴란드 요구사항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성능개량 및 신형 장비 체계통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해야 한다.
폴란드에 납품한 FA-50의 유지, 수리 및 개수(MRO)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분야다. FA-50PL은 한국 공군에서 사용하지 않던 장비와 체계가 다수 포함된다. 유지관리 분야에서 잠재적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리스크를 잘 관리하면서 효과적인 MRO를 통해 한국 공군에서처럼 높은 가동률을 유지한다면, 폴란드에서 FA-50의 유효성을 늘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현지 업체와의 협력 기간도 길어지면서 산업협력 효과도 커질 수 있다.
폴란드에서 추가 수익을 얻는데 MRO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 록히드마틴과 보잉, 프랑스 닷소 등 글로벌 항공우주산업체들은 세계 각국에 판매한 자사의 군용기를 기반으로 하는 MRO 영업을 통해 군용기의 운용주기를 늘리고 매출도 올린다.
폴란드에서 기반을 다지게 되면, 인접국인 체코와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에 진출하는 것도 한층 쉬워진다. 폴란드에서의 사례가 동유럽 국가들의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현지 특성에 맞는 전략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체코 등은 폴란드보다 영공이 작아 전투기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면서도 자국 방위산업과 국방과학기술 육성에 관심이 많다. 소량 생산으로도 단가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면서 충분한 규모의 산업협력 패키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국산화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부품 제공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출이 제한되는 사례를 피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아르헨티나가 FA-50 도입을 검토했지만,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을 치른 영국이 일부 부품에 수출제한 조치를 취해 무산된 적이 있다.
동유럽 국가에 대한 수출에서도 입찰 경쟁 양상에 따라 미국, 유럽의 ‘K방산’ 견제 차원에서 이같은 일이 재연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T-50 계열 항공기는 항공우주분야에서 후발주자였던 한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기체의 성능만으로 해외에서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잠재 고객의 수요에 부응하는 패키지 수출 전략 등을 통해 조금씩 기반을 넓혀가야 한다. 폴란드 수출에 만족하지 않고 FA-50과 KF-21 수출 확대를 위한 정부와 산업계의 종합적인 전략이 요구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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