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김남국 코인’ 비판했다고…청년정치 짓밟는 강성지지층
[거대 야당 민주당의 길]
거액의 가상자산 투기 의혹으로 김남국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면서, 김 의원을 비판한 청년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공격이 극에 달하고 있다. 당 안에선 이들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며,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박성민 전 최고위원, 권지웅 전 비상대책위원 등의 페이스북엔 18일 “도덕성은 성직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 아닌가” “의리 없고 비겁한 청년정치” “이런다고 공천받을 줄 아나” 같은 날이 바짝 선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이들이 이렇게 공격받는 건, 지난 12일 연 기자회견 때문이다.
두 사람을 포함한 민주당 청년 정치인 8명은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며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투기 논란’에 고개를 숙였다. 당 지도부엔 “철저한 진상조사와 당사자의 단호한 조치, 가상자산 보유 현황 전수조사” 등을 요구했다. 같은 날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와 17개 시도당 대학생위도 기자회견을 열어, “청년들이 민주당을 불신하는 이유를 찾고, 바뀌어야 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겠다”며 대학생 당원 전국 연석회의에서 의견을 취합해 당 지도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한 ‘쇄신 의원총회’보다 이틀 앞선 움직임이었다.
곧바로 강성 지지층의 ‘십자포화’가 시작됐다. 이재명 대표의 팬클럽인 ‘재명이네 마을’에는 ‘민주당 청년정치인 8적’이라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에 참여한 정치인 8명의 이력이 공유됐고, 이 가운데 전화번호가 공개된 이들은 문자·전화폭탄에 시달렸다. 시도당 대학생위원장 중 일부는지지자들의 공격에 시달리다 기자회견문에 자신의 이름이 동의 없이 올라갔다고 해명했는데, 이번엔 양소영 전국대학생위원장에게 ‘명의 도용을 했다’는 공격이 쏟아졌다. 일부 커뮤니티에는 양 위원장이 기자회견 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두고 ‘잘 다쳤다’고 조롱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민주당 청원게시판에는 대학생위원장들의 직위해제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1만8609명(18일 오후 4시 기준)의 동의를 얻었다.
청년 정치인들을 상대로 강성 지지층이 이렇게 공세를 펴는 것은,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투기 논란’ 대응에 미적대던 당 지도부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배경 가운데 하나가 이들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단독 플레이’ 말곤, 대선 패배 뒤 청년 정치인들이 조직된 목소리로 ‘당 쇄신’을 요구한 사례가 드물었던 탓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코인 사태에 둔감하던 의원들 중에 대학생·청년 정치인들이 ‘도덕적 파산’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이들도 있었다”며 “쇄신 의총을 앞두고 적잖은 압박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강성 지지층의 거센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위축감을 느끼는 청년 정치인도 적지 않다. 양소영 대학생위원장은 “시도당 대학생위원장들은 나이가 20대 초반에 불과하다. 이들이 받는 협박·욕설·전화폭탄은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당 안에선 이 대표 등 지도부가 나서 강성 지지층에 선을 그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듭 나온다. 조응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가 되고 난 이후에 당내 민주주의가 굉장히 약화됐다”며 “이견을 얘기하면 극성 유튜버가 그걸 과장한 영상을 송출하고 강성 지지층이 공격한다. 이런 여론이 형성되는 (비공식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이장을 (이 대표가) 그만두셔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성민 전 최고위원은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은 취임 뒤 ‘수박(강성 지지층이 비이재명계를 부르는 멸칭)이라는 단어를 쓰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이재명 지도부에도 그런 단호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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