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도 ‘한미약품식 모델’ 활용할까... 상속시장 뛰어드는 PEF

연선옥 기자 2023. 5.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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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 PEF 라데팡스에 지분 매각
상속세 재원 마련 동시에 지분 되사는 콜옵션 추가
공동보유약정으로 경영권 유지...강성부 대표도 LK 시절 ‘관심’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가 사모펀드(PEF)와 손 잡고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막대한 규모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자, 6조원의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넥슨 일가 또한 한미약품그룹식 해법을 활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PEF가 한미약품식 모델과 같은 딜을 넥슨 측에 제안했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경영권을 통째로 PEF에 매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한미약품그룹 사례를 보면 오너 일가는 필요한 급전을 마련하면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PEF와 지분을 공동 보유하기로 약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업계는 PEF와 오너 일가의 ‘상생 모델’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미약품 본사./뉴스1

국내 PEF 업계는 기업의 승계 과정에서 관련 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승계 과정에서 PEF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속세 재원이 필요한 기업의 우호 세력(백기사)으로 지분을 인수한 뒤 이를 다시 해당 경영진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딜을 구성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강성부 KCGI 대표가 과거 이런 방식의 딜을 통해 수익을 낸 사례도 회자되고 있다.

◇ 기업은 상속 재원 마련하고 경영권 방어… PEF는 딜 수익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는 최근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의 지분 11.78%를 PEF 라데팡스파트너스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인 송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기존 63.1%에서 51.3%로 낮아졌다. 하지만 송 회장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대량보유상황보고서를 보면, 최대주주 지분율은 기존 63.1%와 똑같다. 라데팡스가 특별관계자로 추가돼 함께 지분 보유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6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송 회장 일가의 경영권은 흔들릴 일이 없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3132억원을 확보하게 됐다. 이 자금은 상속세를 납부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는 창업자 고(故) 임성기 전 회장이 2020년 사망하면서 주식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5400억원의 상속세가 발생했다. 현재 상속세 중 절반 정도가 미납된 상태다.

오너 일가가 PEF에 지분 일부를 넘겼지만, 한미약품과 PEF가 체결한 주식매매계약에는 오너 일가가 6개월 뒤 다시 지분의 일부를 되사오는 조건(콜옵션)이 붙었다. 지분을 되살 때 연 10% 수준 이자가 붙게 된다. 급전을 마련하는 동시에 지분을 되사올 수 있는 조건에 대한 비용인 셈이다.

이번 거래를 위해 라데팡스는 2개의 펀드를 조성했는데, 트랜치1 펀드의 만기는 5년, 캐피탈사와 함께 구성한 트랜치2 펀드는 만기 3년이다. 라데팡스는 현재 국내 기관을 대상으로 펀드 자금을 조성하고 있는데 늦어도 다음 달 펀드 결성이 완료될 예정이다.

그래픽=정서희

한미약품그룹과 라데팡스의 이번 계약은 기존 계약과는 조금 다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보통 PEF는 펀드를 조성해 회사 지분을 인수한 뒤 주주 제안을 하거나, 기업 경영권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PEF가 오너의 우호 세력으로 지분을 인수해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 주면서 오너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는 1990년대 한미약품이 중국에 북경한미약품을 설립하기 전부터 인연이 깊었다. 오랜 시간 컨설팅을 제공하면서 신뢰가 다져진 양측은 한미약품이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게 됐다. 논의 끝에 한미약품은 경영권을 방어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라데팡스는 수익을 얻어갈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

다만 양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으로 협의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3년 혹은 5년 뒤 오너 일가가 라데팡스 지분을 되사오지 못하면 그때는 갈라설지 모른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양측은 “공동보유약정을 맺었기 때문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지는 못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라데팡스 측은 이를 ‘프렌들리 인게이지먼트 펀드(Friendly Engagement Fund, 우호적 행동주의 펀드)’라고 밝혔다.

◇ 넥슨 故김정주 창업자 유족 상속세, 6兆... 한미약품그룹 사례 참고할까

최대주주 할증 과세를 더해 최고 60% 세율이 적용되는 상속세가 가업 승계를 준비 중인 국내 많은 기업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상속세를 내려면 지분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지분율이 줄어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한미약품그룹이 PEF와 함께 상속세 마련 해법을 마련하면서 넥슨 등 다른 기업도 유사한 형태의 거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넥슨의 지주사 NXC가 보유한 넥슨의 지분 46.2%를 유산으로 남겼다. 부인 유정현 NXC 이사와 두 딸이 이를 상속하면서 6조원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10년 동안 매년 5500억원씩 납부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업계에서는 유족이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런데 유정현 이사가 최근 NXC 사내이사로 나서면서 유족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지분 일부를 활용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방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미약품그룹과 라데팡스 간 딜과 같은 형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 사옥의 모습./뉴스1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오너 2세, 3~4세로 넘어갈 때 가장 큰 장애물이 상속세인데, 기업이 PEF를 활용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이 바로 한미약품그룹 사례”라고 말했다.

PEF 업계는 승계 과정에서 기업들이 PEF를 찾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관련 딜을 구상하고 있다. 한미약품그룹에 앞서 강성부 대표가 주관한 딜도 언급된다. 강성부 대표는 과거 LK투자파트너스를 맡을 당시 중견건설사 요진건설산업을 대상으로 비슷한 계약을 주도했다. 2014년 요진건설 공동창업자인 고 정지국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900억원의 상속세가 발생했는데, 이때 강성부 대표는 요진건설의 우호 세력으로 유족의 지분을 인수했고 공동 창업자 최준명 회장이 2년 뒤 지분을 재매입했다. 결과적으로 요진건설은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강성부 대표는 지분 매각을 통해 두 배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당시 강성부 대표는 “상속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으로 PEF의 새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H&Q코리아는 녹십자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일동제약의 경영권 방어와 승계에 큰 도움을 줬다. 일동제약 2대 주주 녹십자가 경영권을 위협하자, H&Q코리아가 중재에 나섰다. H&Q코리아는 일동제약 백기사로 나서 녹십자가 보유한 지분 29% 중 20%를 인수했고, H&Q코리아는 일동제약과 의결권을 함께하는 조건으로 주식을 공동 보유했다. 이후 H&Q코리아는 일동제약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작업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일동제약 승계도 무리 없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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