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리포트] '위믹스 파동' 재연 막을 거래소 자율규제기구 법적 근거 마련해야
◆가상자산의 규제 방향
불공정거래 감독강화 목소리 크지만
정무위 통과 법안, 거래소 내용 빠져
시장서 투자자 신뢰는 자율규제의 몫
국내 5대 거래소 공동협의체 '닥사'
위믹스 상폐결정도 시장 건전화 노력
질서확립 위해 권한·책임 부여는 필수
닥사의 자율규제 근거 관련법 명시하고
사업자 등록 의무화로 관리 효율 높여야
최근 김남국 의원의 거액 코인 투자가 논란이 된 가운데 가상자산(virtual assets) 시장에 대한 규제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과연 가상자산이 무엇이고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다. 실물이 아닌 가상공간 내지 기존의 가치 개념과 다른 가상자산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상 의견 일치를 이루기 어렵고 한 국가 내에서도 감독 기관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경우 규제 대상이 되는 가상자산의 범위를 놓고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과세를 책임지는 국세청(IRS)의 입장도 다르다. 또 가상자산이 자금세탁에 이용되기 때문에 관여하는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의 입장도 차이가 있다. 증권성에 대한 기준을 일찌감치 확립하고 규제하는 SEC와 SEC보다 폭넓은 규제 입장을 가진 CFTC의 노력은 다소 중복적인 면은 있지만 시장의 혼란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가상자산규제안(MiCA)에 합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시스템을 정립했다. MiCA의 경우 가상자산을 분산원장기술이 적용된 암호자산과 그 밖의 암호자산으로 분류하고 전자의 경우 증권법의 적용 대상, 전자화폐법의 적용 대상, 그리고 MiCA의 규제 대상인 암호자산으로 나누는 체계적인 분류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MiCA가 가상자산에 접근하는 기준은 암호화된 분산원장기술의 사용 여부다.
스위스는 암호화폐를 활용한 자금 조달을 가장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국가다. 스위스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공개(ICO)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2021년 8월 블록체인법도 제정해 명확한 규제를 정립했다. 금지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소위 원칙 중심의 규제(principle regulation) 형식을 통해 신성장 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자금세탁과 같은 불법적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산업 친화적인 규제를 펼쳐 가상자산 시장의 선진국 자리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가상자산의 개념조차 명확히 하지 못했다. 11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첫 단추를 끼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법안은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정의하면서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등은 제외했고 가상자산사업자에게 고객 예치금의 예치·신탁, 고객 가상자산과 동일 종목·동일 수량 보관, 해킹·전산장애 등의 사고에 대비한 보험·공제 가입 또는 준비금의 적립, 가상자산 거래 기록의 생성·보관 등을 의무화했다. 또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행위, 시세조종 행위, 부정 거래 행위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뿐 아니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고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위는 가상자산사업자를 감독·검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가상자산에 대한 자문을 맡는 가상자산위원회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와 감독 기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가상자산의 발행과 거래소 등 가상자산 시장에 관한 사항은 들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MiCA와 비교한다면 매우 아쉽다.
김 의원 논란 이후 계좌의 소유주가 특정되지 않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자금세탁, 시세조종과 같은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 감독의 강화가 시급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바람직하다. 앞으로 탈중앙화된 거래소에 대한 규제를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을 포함한 감독 기관들이 조속히 논의해야 한다. 거래소 규제 논의의 초점은 금융기관으로의 자금 이체 및 지급 결제와 관련해 실명 계좌의 개설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에 모아질 것이다.
자본시장법이 규율하는 자본시장 영역에서도 공적 규제와 자율규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전한 시장 거래가 가능하도록 기본적인 원칙을 세우는 것이 공적 규제의 영역이라면 시장 일선에서 시장을 개설하고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해 투자자의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하는 것이 자율규제의 영역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직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공적 시스템이 결여된 상태에서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주도할 주체는 시장 개설자인 가상자산거래소의 자율규제다. 루나 사태 이후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국내 5개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자율규제를 위해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를 결성했다. 위믹스의 상장폐지 결정에서 보듯이 이러한 사태의 발생은 당해 업체와 투자자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이고 거래소의 단기 수익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위믹스의 상장폐지와 관련한 닥사의 결정은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을 만들어내겠다는 거래소들의 의지로 평가될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된 스위스의 경우에도 금융시장감독청(FINMA)과 FINMA가 자율규제 기관으로 지정한 크립토밸리협회가 ICO를 비롯한 전반적인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 역할을 맡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금융청(FSA)이 공적 규제를 담당하고 있고 금융청으로부터 2018년 자율규제 기관으로 인증받은 암호화폐거래소협회(JVCEA)가 암호화폐 상장 규정을 제정해 규제하고 있다.
정무위를 통과한 법안에서는 자율규제에 관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닥사라고 하는 자율규제 기관이 결성돼 활동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시장질서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가 될지 아직은 지켜봐야 할 때지만 위믹스의 재상장 논란에서와 같이 법적 근거가 미약한 규제 기구는 시장 관리 능력에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시장법의 경우처럼 법적 근거를 지닌 시장감시위원회와 같은 자율규제 기관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공적 규제는 시장 모니터링과 전체적인 정책 방향을 정하는 것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통제하면 된다. 자금세탁과 같은 불법행위를 방지하고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가져오기 위한 자율규제를 위해서는 실명 계좌를 개설한 거래소들의 통합 자율규제 기관인 닥사의 자율규제 기관으로서의 근거를 가상자산법안에 마련해야 된다. 닥사에 상장 규정 제정, 공시 규제 및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처음부터 복수의 거래소로 시작한 미국의 증권거래소들이 통합적인 자율규제 기관을 발족시켜 현재의 금융산업규제국(FINRA)으로 발전했듯이 닥사에 실정법적 자율규제 기관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가상자산거래소의 시장질서를 확립하도록 하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공적 규제 기능은 법령 제정과 정책 방향의 설정을 담당하면서 공적 규제 기관이 인증한 자율규제 기관에 가상자산 업체들의 등록을 의무화하도록 해 균형을 맞춘다면 규제 기관의 전문성에 기초한 효율적인 시장 관리가 될 것이다.
김병연 교수는
연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UC버클리·조지타운로스쿨에서 연구했고 자본시장법 제정 TF 위원,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위원과 금융감독원 금융투자업 인가 외평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며 한국증권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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