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무관심에서 월드컵 시작 김은중호, A대표팀과 같은 잣대는 곤란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향후 10년, 세계 축구를 주도할 인재를 볼 수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아르헨티나에서 21일 오전(한국시간) 미국-에콰도르, 과테말라-뉴질랜드의 경기를 시작으로 열전에 들어간다.
당초 대회는 인도네시아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종교적인 문제로 이스라엘을 받지 않겠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선언에 FIFA는 개최권 박탈이라는 철퇴를 내리쳤고 대체지를 물색해 아르헨티나로 정리했다.
한국에서 비행거리 7시간이면 이동 가능했던 인도네시아에서 37시간 가까이 걸리는, 그것도 칠레 국경과 인접한 아르헨티나 멘도사라는 도시에서 조별리그를 치르는 김은중호에는 파김치처럼 퍼지는 여정이다. '극동'에서 일본과 함께 날아갔기에 더욱 힘든 여정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아르헨티나, 큰 변수와 싸우는 김은중호
그래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적응 훈련을 하고 이동하는 등 빠른 계획을 세웠다. 김은중(44) U-20 감독은 월드컵 준비의 기본인 현지답사조차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은 스태프와 코디네이터에게 맡겨야 하는 현실에 혀를 끌끌 찼다. 적응해야 할 것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대회 시작 전까지 국내 분위기는 U-20 월드컵이 하는지 알기도 어렵다. 언론이 기사를 쓰고 영상으로 알려도 체감이 어렵다. 워낙 많은 축구계 사건 사고가 U-20 대표팀을 잊게 만든 것은 아닌가 싶은 정도다.
일반 국민들에게 "2019년 폴란드에서 '슛돌이' 이강인(마요르카)을 비롯해 동료들의 맹활약으로 결승까지 올라가서 우크라이나에 아깝게 패하며 준우승했던 대회"라고 설명해야 "그 대회를 아르헨티나에서 하느냐"라는 대답 정도가 돌아온다.
그만큼 이번 대회는 관심이 적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스타급 선수의 부재 때문이다.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지만, 2005년 네덜란드 대회에서는 '축구 천재' 박주영(울산 현대)의 등장에 흥분했고 2007년 캐나다 대회에서는 '쌍용' 기성용(FC서울), 이청용(울산 현대)에 병마와 싸우며 회복 중인 신영록이 이름을 알렸다.
8강에 진출한,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2009 이집트 대회에서는 김영권(울산 현대),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김보경(수원 삼성) 등이 기대에 부응했다. 2011년 콜롬비아 대회는 특급 스타는 보이지 않았어도 조직력으로 뭉쳐 16강을 이뤄냈다. 장현수(알 힐랄), 김경중(수원 삼성)이 골을 넣었다.
역시 8강까지 갔던 2013년 튀르키예 대회는 권창훈(김천 상무)이 수원 삼성 유스 매탄고의 힘을 보여줬고 류승우(수원 삼성)도 독일행의 단초를 마련했다. 2015년 대회는 본선에 오르지 못했고 2017년 한국에서 열렸던 대회는 이승우(수원FC), 백승호(전북 현대) 두 FC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의 이름값에 신태용 감독의 지도력을 더해 16강까지 진출했다.
대회 서너 달 전부터 분명 기대받는 선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선수들이 안팎으로 보일 기회가 줄었다. 2020~2021년을 통으로 날렸다.
코로나19가 실전 감각 쌓을 기회를 날렸지만…강성진-김지수-김용학 등 기대감↑
유럽의 경우 2021년부터 소규모 지역 대회와 친선경기를 재개해 교류하는 방식으로 선수들의 실력을 확인했다. 아프리카는 U-20 네이션스컵 예선, 중남미도 비슷했다. 완전한 격리와 봉쇄가 시행됐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꿈도 꾸지 못했고 지난해에서야 아시아 예선으로 조직력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김 감독도 "다들 선수가 누구 있냐고 하더라. 걱정되더라. 막상 대회가 시작되면 또 관심을 갖고 볼 것이라 더 그렇다"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선수들의 기량이 분명 완벽하지 않겠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보일 단점에만 주목해 선수들의 기가 죽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더 K리그, 대학 U리그, 전국 대회를 누비며 선수를 꼼꼼하게 살폈다. 튀는 선수는 없지만, 아시아 예선에서 가능성을 보였던 공격수 강성진(FC서울)이나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에서 주전 도약을 노리는 김용학(포르티모넨세)에 올 시즌 K리그 개막 초반 돌풍의 주역인 대전 하나시티즌 영플레이어 배준호에게 시선이 쏠린다. 또, 브렌트포드 영입설이 터진 중앙 수비수 김지수(성남FC)의 경기력을 챙겨봐야 하는 것도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됐다.
걱정은 실전 감각 부족이다. 한국은 프랑스, 온두라스, 감비아와 F조에 묶여 차례대로 싸운다.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프랑스는 대부분 리그앙 소속이거나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오스트리아에서 뛰고 있다. 1군에 들지 못해도 B팀에서 뛰며 실전 감각을 쌓았다. 온두라스나 감비아도 마찬가지다.
U-20 대표팀은 청소년에서 성인 대표팀으로 가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팀이다. 프로 입문이 빨라지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으로 병역을 해결해야 유럽에 편하게 도전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나서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더 주목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계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U-20 대표팀이나 17세 이하(U-17) 등 하부 대표팀의 뿌리가 더 튼튼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대표팀을 A대표팀과 같은 기준, 시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문화이지만 '과정'보다 '결과 지향'의 한국 문화에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좋고 슬픈 경험을 모두 쌓아야 A대표팀으로 올라가 단단해지지만, 한국은 모든 대표팀에 대회에서 성과를 내야 하고 못 하면 A대표팀 수준으로 비판받는다. 이 과정에서 재능 있는 선수가 무수히 사라졌고 지도자도 사장 되는 경우가 많았다.
10년 이상 연령별 대표팀만 지도하는 지도자 없는 현실이 말하는 것은?
2007년 한국에서 열렸던 17세 이하(U-17)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은 존 피콕(68)이라는 감독이 지휘했다.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51세였다. 한국이라면 프로팀을 지휘하고 있거나 A대표팀 코칭스태프였겠지만, 피콕 감독은 U-17 대표팀을 열정적으로 지도했다.
그는 1998년 더비 카운티 유소년팀 감독을 출발점으로 U-16, U-17 대표팀 감독을 연속해 맡았다. 놀라운 것은 2002년부터 U-17 대표팀을 맡아 선수들을 육성했다는 점이다. 2015년까지 이어갔고 이후 더비 카운티 코치에 선임됐다. 당시 한국 취재진을 만난 그는 "이렇게 오래 U-17 대표팀을 맡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어린 연령대 선수들을 지도할수록 지도자의 경력, 경험이 중요하다. 나이가 있는, 경륜을 쌓은 지도자가 지도해야 선수들의 기량도 더 빨리 는다. 내 자식처럼 신경 쓰게 된다"는 철학을 설명했다. 그를 보좌하는 코치진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잉글랜드를 비롯해 다수 유럽 국가는 조기 프로 진출 문화가 일찌감치 정착해 U-20 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들의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를 지도자들이 보완한 것이다. 당시 잉글랜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대니 웰벡(브라이턴 호브 알비언,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빅터 모지스(스파르타 모스크바, 당시 크리스탈 팰리스), 대니 로즈(당시 토트넘 홋스퍼) 등을 남겼다. 모지스는 이후 A대표팀을 나이지리아로 선택했다.
우리 대표팀 연령별 지도자는 대회마다 새로운 얼굴로 교체된다. 프로팀에 가기 위해 연령별 대표팀을 발판 삼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 고유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다만, 지도자의 연속성이 있어야 선수들의 특징을 빨리 파악하고 하나의 팀으로 완성하지만, 그러기에는 환경이나 처우가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대한축구협회에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 연봉 수준을 묻자 "알려주기 어렵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오래 있기가 어려운, 오직 지도자의 열정과 사명감에만 기대는 측면이 있어 그렇다.
또, A대표팀 감독이 바뀌면 그 개인의 전술적 경향에 따라 맞춰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빌드업에 기반한 안정지향의 축구를 4년 넘게 녹여 냈지만,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축구는 아직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A대표팀이 연령별 대표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전임지도자를 경험했던 익명의 A씨는 "솔직히 프로 지도자보다 더 많은 선수를 관리하고 살펴 보지만, 연봉은 너무 비교된다. 사명감을 갖고 한다고 치자. 결과에 따라 오는 찬사는 축구협회가 다 챙겨 받고 비판은 오직 지도자의 몫이다. 방패 역할을 해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누가 책임을 갖고 선수 육성에 나서고 싶어 하나.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다. 다시 하라고 해도 하기 힘든 것이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다"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외적 부담을 안고 김 감독은 대회에만 집중한다. 어떤 성적을 낼 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관심을 덜 받는 제자들이 능력껏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대회가 끝나면 성공과 실패 중 하나의 낙인을 안고 백수가 된다는 점이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기에 그렇다. 승부의 세계에서 늘 있는 일이지만, 김 감독에게도 다음을 위해서는 중요한 대회가 됐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하나 더 놓는 대회냐, 단순한 내용과 결과만 보고 단정하느냐는 팬들과 국민의 시선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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