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연결하는 철새들의 비행을…추앙한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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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뺨지빠귀는 몸무게가 30그램밖에 안 되지만, 해마다 북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에서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했다가 돌아온다.
알래스카와 중국 황해 연안, 키프로스, 인도 북동부 나갈랜드 등과 미국 곳곳의 철새 경유지 등을 발로 뛰며 다양한 철새들의 이동 경로를 조사하고 새들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와 문제를 들춰낸다.
어떤 철새는 며칠이나 몇 주, 심지어는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비행하기도 하는데, 그동안 뇌를 반으로 나누어 반쪽씩 번갈아 가며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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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명 리듬 좇는 그들
첨단 기술과 장비 이용해
이동 경로와 비밀 탐사
날개 위의 세계
철새의 놀라운 지구 여행기
스콧 와이덴솔 지음, 김병순 옮김 l 열린책들 l 3만2000원
회색뺨지빠귀는 몸무게가 30그램밖에 안 되지만, 해마다 북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에서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했다가 돌아온다. 도요물떼새 320여 종 가운데 적어도 19종은 약 4800㎞ 이상을 논스톱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 서부에서 뉴질랜드까지 약 1만1500㎞를 한 번도 쉬지 않고 8~9일을 꼬박 날아 주파한다. 제비갈매기는 한 해에 9만1000㎞를 이동한다.
철새들이 해마다 지구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면서도 길을 잃거나 낙오하지 않고 떠났던 자리로 돌아오는 메커니즘은 경탄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미국의 탐조가이자 조류학자 스콧 와이덴솔의 <날개 위의 세계>는 자신의 직접 경험을 바탕 삼아 철새들의 이동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알래스카와 중국 황해 연안, 키프로스, 인도 북동부 나갈랜드 등과 미국 곳곳의 철새 경유지 등을 발로 뛰며 다양한 철새들의 이동 경로를 조사하고 새들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와 문제를 들춰낸다.
큰뒷부리도요는 남쪽으로 향하는 비행을 앞두고 체중을 두 배 남짓으로 불린다. 필요 없게 된 모래주머니와 창자 같은 소화기관들은 줄어들어 위축되는 반면, 날개에 동력을 공급하는 가슴 근육은 질량이 두 배로 증가한다. 어떤 철새는 며칠이나 몇 주, 심지어는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비행하기도 하는데, 그동안 뇌를 반으로 나누어 반쪽씩 번갈아 가며 잠을 잔다. 최근에는 철새가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해 지구 자기장을 시각화함으로써 위치를 파악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철새들의 이동 경로와 생태를 파악하는 데에는 전통적인 망원경과 가락지 외에도 초소형 위치 추적 장치 ‘지오로케이터’와 전 세계 탐조가들이 참여하는 스마트폰 앱 ‘이버드’(eBird) 같은 최신 수단들이 동원된다.
책의 첫 장 무대인 중국 황해 연안 갯벌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중간 기착지들은 철새들의 안녕과 번성에 필수적이다. 한반도 서쪽의 갯벌 역시 많은 철새의 중간 기착지로 구실하는데, 2006년 새만금방조제가 들어서는 바람에 전 세계 붉은어깨도요 총 개체 수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7만 마리 이상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 숫자는 해마다 새만금을 찾아왔던 붉은어깨도요 개체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새만금방조제와 같은 인위적인 지형 변화와 기후 변화, 별빛을 가리는 도시의 불빛들, 살충제 살포로 인한 새들의 먹이 감소, 새를 사냥해 먹는 인간들의 식문화 등이 철새들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지은이는 알래스카 디날리 국립공원에서 5년 전 자신과 동료들이 지오로케이터를 부착했던 회색뺨지빠귀를 다시 붙잡아 그 새의 비행 기록을 확인한다. 9월 중순에 디날리를 출발한 이 개체는 캐나다 평원의 북쪽 가장자리를 둘러서 남하해서는 미국을 거쳐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서부를 횡단한 뒤 파나마 열대우림을 경유해 11월30일 마침내 월동지인 베네수엘라의 한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무려 1만400㎞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지구 북단의 툰드라 황야 지대와 열대의 우림 지대를 연결하는 작은 새의 경로를 확인하며 지은이는 “한 생명체에 대한 무한한 추앙”의 느낌을 받았노라고 고백한다. 그를 사로잡은 추앙의 느낌이 철새들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지구 속 모든 생명체의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어쩌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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