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해악 없지만 앞으로 있을 수도’…판사가 내준 ‘가정법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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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피의자들이 단체 협약 시 피해자들에게 협박 또는 해악 등을 가한 사실이 없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전임비를 지급하지 않을 시 위와 같은 행동을 통해 이후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수 있는 정황이 충분히 예상되고.'
지난 12일 경찰이 건설노조 대전·세종·충청 전기 지부 간부들을 압수수색하며 제시한 영장에는 '정황', '예상' 등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정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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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피의자들이 단체 협약 시 피해자들에게 협박 또는 해악 등을 가한 사실이 없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전임비를 지급하지 않을 시 위와 같은 행동을 통해 이후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수 있는 정황이 충분히 예상되고….’
지난 12일 경찰이 건설노조 대전·세종·충청 전기 지부 간부들을 압수수색하며 제시한 영장에는 ‘정황’, ‘예상’ 등 벌어지지 않은 일을 가정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특별한 문제가 없었음에도 노조전임비 관련 조항이 담긴 단체 협약 체결 자체를 금품 갈취(공동공갈)로 보고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단체 협약 체결은 헌법(단체교섭권)과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법(노동조합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건설노조 탄압 대응 100인 변호인단’(변호인단)은 1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건설노조 노동자에게 적용된 영장 청구서를 바탕으로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 방식과 잘못된 법 적용을 지적했다. 함승용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수사기관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운영방법, 노동조합법 등에 대해 무지하다고 느껴질 정도”라며 “수사기관에 주어진 권한을 자의적으로 남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말 ‘50명 1계급 특진’ 등을 내걸고 특별 단속을 시작한 뒤 1천여명 넘는 건설노조 간부와 조합원을 소환조사했다.
이날 변호인단이 제시한 사례를 보면, 경찰은 경기도 포천에서 2021년 7월에 벌어졌던 노사 갈등 문제를 1년9개월 뒤인 지난 4월 다시 문제 삼아 수사에 나섰다. 지난달 현재 노사는 이미 ‘노사교섭 합의서’까지 작성하고 문제를 푼 뒤였다. 이 밖에도 변호인단은 △혐의와 무관한 포괄적인 압수수색 △혐의를 특정하지 못한 노조 간부를 일단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하는 등 적법절차를 위반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은 특히 현장 교섭과 단체 협약 이행 요구를 강요·공갈 같은 범죄로 보는 수사기관의 태도를 심각한 문제로 짚었다. 산별·지역별 노조인 건설노조는 중앙교섭과 각 권역별 교섭을 통해 전문건설업체(하청)와 단체 협약을 맺는다. 이들 업체가 건설 현장에 들어오면 이미 정해진 단협 내용을 이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두고, 해당 지역 노조 간부들이 현장 소장 등과 교섭한다. 사업장이 고정적이지 않고 실직과 입직이 잦은 건설 노동 특성을 반영한 초기업 교섭 방식인데, 경찰이 이 과정을 모두 범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분신 뒤 끝내 숨진 양회동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또한 지역 건설노조 간부로 이런 역할을 맡았다. 여연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노사가 서로 압력을 가하며, 때로 양보하고 협의하는 과정은 노사 교섭의 당연한 모습”이라며 “노조법은 오히려 노조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으려는 사쪽의 교섭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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