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전설의 비행사 린드버그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미국을 노린 음모’ 국내 첫 소개
파시즘 그려 트럼프 시대 재부상
‘왜 쓰는가’엔 고독한 문학전쟁 옹근
미국을 노린 음모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l 문학동네 l 1만8000원
왜 쓰는가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l 문학동네 l 2만8000원
이 소설이 60년도 지난 과거를 ‘가정’함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이유는 실제 그럴 수 있었다는 역사적 가능성 때문이다. 더 올돌한 이유는 그 가망이 바로 ‘현대 미국의 작가’ 필립 로스(1933~2018)에 의해 시현된다는 사실로 말미암겠다.
필립 로스. 노벨문학상에 가장 접근시켰던 것으로 보이는 <포트노이의 불평>(1969) 등을 통해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싸움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특히 유대인 독자와 페미니스트로부터 비판받았던, 하지만 때마다 반박하며 맞선 작가. 급기야 평론가들이 “로스의 소설보다는 로스에 관해 집요하게 쓰”게 한 작가. 이러한 80년대를 넘어, 유대인 작가 ‘네이선 주커먼’을 주인공으로 하는 <미국의 목가>(1997)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휴먼 스테인>(2000)으로 조합된 ‘미국 3부작’ 등을 통해 미국 사회 혼돈상과 뒤틀린 개별적 삶들을 정교하게 들춘 강박주의의 작가.
국내 처음 번역 소개되는 <미국을 노린 음모>는 다섯 해 전 이달 타계한 필립 로스가 친나치 대통령이 이끄는 1940년대 미국을 상정한 작품(2004)으로, 음모론적 접근에 있어 1973년 <위대한 미국 소설>의 계보를 이으면서 미국 현대사와 개인사의 서로 씹어 삼키는 톱니바퀴적 결부성을 직시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가장 늦게 쓰인 ‘미국 3부작’의 시원이라고도 해볼 만하다.
1939년 6월말, 민주당 출신 루스벨트 대통령에 맞설 공화당 후보로, 새벽 네시 전혀 뜻밖에, 만장일치 환호로 지명된 이 있으니 1927년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단독 횡단 비행한 찰스 린드버그다. 미국, 특히 어린이의 영웅이 된 그해 ‘나’(필립)의 형 샌디가 엄마 배에 들어섰고, 린드버그의 -실제- 첫째 아들이 유괴 살해(1932년)되며 링컨에 버금가는 순교자로 추앙받던 즈음 ‘나’는 태어났다. 뉴저지의 뉴어크 유대인 구역.
하지만 이후 린드버그는 -실제 그랬듯- 독일을 방문하며 친나치·반유대주의·고립주의 행보를 보이고 -사실과 다르게- 공화당 정치인들이 뒷배가 되어 극우 대통령으로 일거에 당선되며 미국 사회를 뒤흔든다.
필립 형제, 2차대전 참전으로 다리를 잃고 “유대인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 성토하는 사촌 앨빈, 벽장에서 목을 맨 이웃 위시노우와 그의 아이 셀던 등은 “행복한 가족이었다”. 소설은 파시즘이 지배한 1940년대 초반의 ‘찰나’를 거치며 이들 세계가 어떻게 파멸하는지, 미국 사회는 어떤 위기에 처하는지 필립의 회고로 형상된다. 특히 혐오와 광기가 시대 가치로 작동하는 사회 원리의 고찰과 다큐멘터리적 재현, 그때마다 미시적으로 조명되는 어린 주인공들의 처지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표독한 농담처럼 허문다.
2017년 이래 ‘트럼프 시대’에 이 소설이 다시금 부상하고 2020년 에이치비오(HBO)의 드라마로까지 제작 방영된 이유일 것이다.
이 대체 역사물은 결국 스스로 온전한 ‘개인’일 수 없는 개인을 증언하기 위한 거대한 장치에 불과(?)해 보인다. 역으로, 구조(장치) 밖 개인의 존재를 낙관하기 어렵다. 첫 구절의 예고대로다.
“이 기억엔 두려움이 잔뜩 스며 있다. 영원히 가시지 않는 두려움이.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혹은 우리 부모님이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겁이 많은 아이가 되었을까 싶다.”
작중 필립은 필립 로스의 생애와 두루 겹친다. “‘미국 유대인 작가’라는 칭호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으나 ‘유대인성’은 그의 작품들의 디엔에이(DNA)이고, 그중 “겁이 많은 아이”는 작품관을 적극 드러내고 읽는 자들의 세계와 대척도 마다치 않던 로스의 가장 깊숙한 데 웅크려 온 자아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함께 출간된 필립 로스의 유작 <왜 쓰는가>(2017)에 술회된바, “우리 가족의 관점에서 볼 때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연발생적이고 즉각적인 선택, 구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문제의식과 “가장 큰 횡재는 로스 가족과 1940년경 그들의 환경의 찬찬한 복제가 아니라 그들 바로 아래층에 사는 그 매우 불행한 가족, 내가 위시노우라고 이름 지은 가족의 발명이었다. 그들에게는 린드버그 반유대주의의 예봉이 그대로 떨어지는데, 특히 그들의 아들 셀던 위시노우를 낳는 일에서 그렇다. 그는 나의 다른 자아, 나의 원하는 게 많은 자아, 악몽 자아다”(‘나의 유크로니아’)라는 고백이 전술의 이해를 돕는다.
<왜 쓰는가>엔 그 밖의 작품에 얽힌 창작론, 논점, 더불어 작가로서의 소설관, 개인사, 수상 소감 등이 조목 담겼다. 프리모 레비, 밀란 쿤데라, 이반 클리마 등 동료 작가와의 대담은 더 많은 필립 로스를 만나보게 한다. 위키피디아에 기술된 <휴먼 스테인> 등에 관한 오류의 수정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자 주간지 <뉴요커>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서신 형태로 거듭 지적하여 관철시킨 일화(2012년. ‘정오표’)나 처음 소설을 쓰게 된 사정(‘주스냐 그레이비냐’) 등은 로스답게 흥미롭다. 하지만 백미는 서문에 있다. 작가로서의 생애 마지막 선언처럼 남긴 “여기 내가 있다. 소설이라는 변장과 꾸밈과 책략에서 나와 여기에 있다. 여기 내가 있다”는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반세기 고독한 문학과의 전쟁을 치른 자가 쥐고 있는 활자의 오래된 비린내로 기어코 존엄해 보인다.
문학동네는 소설과 에세이에 더불어 ‘올 어바웃 필립 로스’라는 제목의 소책자도 출간해 일목요연하게 그의 생애와 작품, 영향력을 개관할 수 있도록 했다. 뉴어크 출신 작가가 소장하던 책 3500권을 2016년 뉴어크공립도서관에 기증하며 남긴 말은 이러하다.
“도서관은 나의 또다른 뉴어크의 집, 즉 나의 첫번째 다른 집이었다.”
로스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는 인생 소설 15권을 꼽았다. <시민 톰 페인>(읽은 나이 14살), <핀리 렌>(16살), <천사여, 고향을 보라>(17살), <호밀밭의 파수꾼>(20살)에서 <안나 카레니나>(37살), <셰리>(40살), <계피색 가게들>(41살)까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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