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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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그리스 아테네에 거인 도적 프로크루스테스가 살았다.
유연한 사고 없이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댈 때 흔히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한다.
요즘 농촌에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영웅 테세우스가 프로크루스테스를 쇠침대에 눕혀 그가 했던 악행 그대로 똑같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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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그리스 아테네에 거인 도적 프로크루스테스가 살았다. 선량한 사람을 납치해 돈은 물론 목숨까지 빼앗는 극악무도한 자였다. 그는 납치한 사람을 쇠로 만든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늘려 죽이고, 크면 잘라 죽였다. 유연한 사고 없이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댈 때 흔히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한다.
요즘 농촌에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최근 정부가 연매출 30억원을 초과한 사업장에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사용을 제한하는 지침을 내놓자 농촌권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는 물론 지역주민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인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주민 불편이다. 면 단위 마을엔 작은 슈퍼마켓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농협에서 운영하는 하나로마트가 상권을 지탱하는데 ‘매출 30억원 초과’ 기준에 걸린 곳에서는 지역화폐를 쓰지 못한다. 상품권을 쓰려면 읍내나 다른 도시로 나가야 하니 지역화폐는 그야말로 ‘계륵’이 돼버렸다.
꽤 규모가 있는 전남의 한 로컬푸드직매장도 지역화폐를 받지 못하게 됐다. 이곳은 지자체와 주민이 출자한 조직이다. ‘지역농산물을 지역민이 소비하게 한다’는 취지로 설립됐건만 정작 지역에서 발행한 화폐로 거래하지 못하는 모순이 생겼다. 지역화폐로 발생하는 매출이 30%가량 차지한다는데 앞으로 이곳에 농산물을 출하하는 소농과 영세농의 피해를 정부가 책임질 리 만무하다.
역차별 문제도 불거진다. 한 시골 오일장 앞에 들어선 대형 농약사에서는 지역화폐로 손쉽게 결제할 수 있다. 그곳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30억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간 매출 수십억원을 내는 상인의 점포다.
지역화폐 사용이 자유로운 편의점은 또 어떤가. 물론 이곳 가맹점주는 소상공인이지만 편의점 뒤에는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대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편의점 대표 기업 BGF리테일(<CU> 운영회사)의 1분기 매출은 1조8496억원, GS25는 1조8667억원에 이른다.
지역화폐 정책을 펴는 행정안전부 지역금융지원과 관계자조차 “사업자등록을 토대로 한 매출액 기준이 타당한지, 시민출자 기관이나 협동조합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최후는 처참했다. 영웅 테세우스가 프로크루스테스를 쇠침대에 눕혀 그가 했던 악행 그대로 똑같이 죽였다. ‘매출 30억원’이라는 잣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다를 바 없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탁상행정은 국민의 원성을 살 테고 그 원성은 부메랑이 돼 고스란히 정부로 돌아갈 것이다.
이문수 전국사회부 차장 moon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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