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기묘한 어떤 신화, 엠비티아이(MBTI)

유강하 2023. 5.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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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가지 유형에 담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무한한 우주
혈액형 성격론·4체액설·체질…
인간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들
칼 융 심리유형론 근거한 MBTI
체계적·과학적이라고 느끼지만
융조차 ‘개별적 접근 방법’ 역설
다양하고 유동적인 개개인의 삶
이론이나 분류에 종속될 수 없어

엠비티아이(MBTI) 열풍이 불었던 게, 도대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부터였을 것이다. 종종 엠비티아이가 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 물음에 기시감이 생기는 건, 오래 전에 받았던 상대방의 궁금증, 그러니까 혈액형이 뭐냐는 질문과 꽤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피가 곧 개인 능력이나 성격과 직결된다는 믿음의 근거가 되었던 혈액형 검사, 폴란드의 우생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이 검사는 일본에 전해졌고, 이것은 다시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유행이 끝난 듯 싶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이후에 다시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겨우 네 가지 유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혈액형 분류법은 한때 매우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혈액형 분류법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B형 남자친구’, 2004) 재미 삼아 묻는다고는 하지만, 혈액형이 밝혀진 후 저도 모르게 내뱉는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와 같은 감탄사는, 혈액형 분류법에 힘을 싣는 일종의 문화적 믿음이기도 했다.

혈액형 분류법과 비교해보자면, 엠비티아이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데가 있다.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앞머리를 딴 이 검사는 스위스 출신의 의사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한다.

엠비티아이는 외향, 내향, 감각, 직관, 사고, 감정, 판단, 인식 등 이성적 부분과 감성적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로 조합되어 있어서, 비교적 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모녀가 고안한 이 심리검사는 이미 반세기가 훨씬 넘는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무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신뢰받는 유형론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검사는 일상적 대화뿐만 아니라 면접, 심지어 학생들의 진학 지도의 현장에서도 활용되곤 한다. 열여섯 개의 유형에 따라 많은 직업이 나열되어 있는데, 특정한 유형에 속한 학생들은 우려스럽게도 그 직업군 안에서‘만’ 미래를 고민해볼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면, 혈액형 검사나 엠비티아이 검사가 있기 전에도 인간을 유형화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단히 있어 왔다. 그리스에서는 4체액설로 사람들의 기질을 파악하려고 했고, 우리나라의 사상의학에서는 사람의 체질을 넷으로 나누어 이해하려고 했다. 인디언들은 태어난 달(月)과 동물을 연결해서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좀 더 복잡하기는 하지만 타고난 때(연월일시)를 기준으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명리학이 있었다. 그리고 낭만적이게도 별자리에 기반한 운명 해석론도 있었다. 나와 너를 이해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끈기 있고 전방위적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것과 비교했을 때, 칼 융의 이론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엠비티아이는 일종의 ‘과학적’, ‘체계적’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기에 적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험과 연구, 통계와 숫자, 문자의 나열은 그 분류를 더욱 ‘과학적임직하게’만들어 준다.

그러나 왕성한 연구와 임상 활동을 했던 융은 말년에 이르러, 사람들이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아마도 죽음에 임박한 대학자의 각성이었을 것이다.)

융은 그의 말년의 저작인 ‘인간과 상징’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모든 연구를 되돌아보며 “모든 사례는 그 나름대로 고유하기 때문에 그 사례에 맞는 개별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융에게 있어 유일한 현실은 개성 있고 개별적인 개인일 뿐이고,(“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 각각의 개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고 우주였던 것이다. BTS가 “너는 나의 우주(you are my universe, ‘My Universe’)”라고 했던 노래했던 것처럼.

한 사람은 이론이나 분류에 종속되지 않는 유니크한 우주이다. 운명(運命)의 ‘운(運)’이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삶은 고정되지 않고 부단히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담아내기에 네 개, 여덟 개, 열여섯 개의 칸은 적고 좁다. 경계 없는 공간을 유영하듯 움직여야 하는 각 개인의 독특하고 개별적인 무수한 우주가 열여섯 개의 칸으로 욱여넣어진 것은 아닌지, 그 협소한 열여섯 개의 공간을 자꾸만 갸웃거리며 들여다보게 된다.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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