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에만 높아지는 도덕성 잣대... 여야 윤리기구의 정치학

김민순 2023. 5. 1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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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김남국 논란에 윤리기구 역할 부각
'내년 총선 염두' 지도부 대응에 적극 보조
'불 끄기용' 아닌 상시 가동·공정성 확보해야
"정치적 계산보다 국민 눈높이에 맞출 필요"
태영호(왼쪽)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에 각각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차기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으면서 여야 각 당내 윤리기구의 활발한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당의 윤리기구는 소속 정치인들의 윤리의식을 고양하고 도덕성 문제 등이 불거졌을 때 이를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정당 차원의 자정능력을 발휘해 도덕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논란에 따른 민심 이반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까지 반영돼 있다. 최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각종 설화를 자초한 김재원 최고위원과 태영호 전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치 처분을 내리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상자산(코인) 투자' 의혹이 불거진 김남국 의원에 대해 윤리감찰을 지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여야 윤리기구의 활동이 항상 긍정 평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내 독립기구라는 위상에도 윤리기구의 활동과 결정이 여론에 흔들리거나 지도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징계 절차와 수위도 들쭉날쭉하다. 평상시에는 논란이 발생해도 온정주의적 대응으로 일관하다가도 선거철이나 지지율이 급락할 때에는 극약 처방 식의 징계 결정을 서두르기도 한다. 이처럼 절차와 수위에 대한 분명한 잣대가 없다 보니 형평성, 공정성을 둘러싼 뒷말이 나온다. 당 윤리기구 가동에 따른 지도부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논란 당사자들에게 자진탈당을 권하거나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여야, 2020년 이후 3년여간 총 29건 징계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윤리기구에서 논의된 안건 중 처리가 완료된 안건은 총 29건이었다.

국민의힘은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당시 '세대 폄하' 발언과 '세월호 망언' 논란을 일으킨 김대호·차명진 후보에 대한 징계를 시작으로 총 20건을 처리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징계 수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 등 4단계로 나뉘는데, '당원권 정지'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진 경우는 해당 기간 10건이었다. 징계 사유로는 설화가 6건으로 가장 많았고, 채용비리나 성 상납 의혹 등 형사사건 5건, 당론 배치 1건이었다. 나머지는 방역수칙 위반 등이었다.

민주당은 9건의 징계 안건을 처리했다. 민주당의 징계 수위는 △경고 △당직 자격정지 △당원 자격정지 △제명 등 4단계다. 이 중 '당원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는 8건이었다. 중징계 사유로는 부동산 의혹 관련이 4건, 성추행 등 성비위 관련이 4건이었다. 경징계는 금태섭 전 의원이 2019년 당론과 달리 공수처 설치법에 기권표를 던진 것에 대한 1건이었다.

김종인(오른쪽 두 번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2020년 4월 9일 국회에서 김대호 후보의 '세대비하 발언'과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유족 비하' 막말 등 실언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의 주요 당내 인사 징계 현황.

선거 임박하면 지도부 징계 결정 후 윤리위 회부

더불어민주당 박지현·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022년 5월 12일 국회에서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민주당의 입장을 밝히고 공식 사과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징계 건수나 중징계 비중만으로 각 정당의 윤리의식이나 자정능력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주요 안건들이 총선, 지방선거 등을 전후로 발생한 리스크를 수습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담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암묵적으로 지도부 의중을 따를 경우 징계 수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정치적 목적이 개입돼 있다 보니, '윤리위 회부→심의·의결→징계 확정'이라는 통상 절차를 건너뛰고 지도부 직권으로 중징계를 내린 후 윤리위 절차를 밟기도 한다. 일례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2020년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3040세대는 논리가 아니다. 거대한 무지와 착각',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 등 세대 비하 발언을 한 김대호 서울 관악갑 후보의 제명을 결정한 뒤 윤리위에 회부했다. 윤리위 결정도 지도부 결정과 같은 '제명'이었다. 전국 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대형 악재에 지도부가 서둘러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이 최근 '5·18 정신의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 우파 통일' 등의 발언을 한 김재원 최고위원과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 녹취가 공개된 태영호 전 최고위원에 중징계를 내린 것도 지지율 하락과 길게는 내년 총선까지 의식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김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1년, 태 전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받았는데, 두 사람의 징계 수위를 가른 것은 '최고위원직 사퇴'였다. 윤리위원장의 '정치적 해법' 언급에 따라 최고의원직을 내려놓은 태 전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 공천 신청의 길이 열린 반면, 이를 따르지 않은 김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 공천의 길이 막혔다. 설화의 경중을 따지기보다는 지도부와 윤리위 의중의 수용 여부에 따라 결정적 변수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신주류가 구주류를 내쫓는 데 윤리위 징계를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가 성상납 의혹 건 등으로 중징계를 받은 것은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수면 아래에 쌓여 있던 이 전 대표와 윤핵관 간 갈등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윤핵관 등이 당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표의 발언과 의혹을 윤리위에 회부하며 징계를 활용했다는 시각이다.

가상자산 투자 의혹으로 자진 탈당을 선언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자진 탈당해 '당 윤리기구' 무력화

민주당 윤리기구가 다룬 안건들은 성범죄·부동산 관련 의혹이 대부분이었다. 선거를 전후해 당내 광역단체장들의 잇단 성추행 사건과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집값 폭등에 대한 싸늘한 여론을 의식해 징계를 내린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5월엔 박완주 의원(현 무소속)에 대해 보좌진 성추행 의혹에 대해 통상 절차인 윤리심판원을 거치지 않고 비상대책위원회 차원의 비상징계(제명) 결정을 내렸다. 6·1 지방선거를 20일 앞두고 터진 악재를 막기 위한 측면이 컸다. 안희정·박원순·오거돈 등 전직 광역단체장들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지탄받은 전력이 있는 만큼 '성범죄 정당'으로 이미지가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민주당에서는 최근 자진 탈당으로 윤리기구 활동을 무력화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어 도마에 올랐다. 거액의 코인 투자에 의혹이 불거진 김남국 의원은 지난 14일 "중요한 시기에 당에 그 어떤 피해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탈당을 선언했다. 대국민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는 그의 탈당 선언으로 이 대표가 윤리감찰을 지시한 것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당내에서도 '징계 회피용 꼼수'라는 비판이 터져 나온 이유다. 민주당은 김 의원 탈당과 지도부의 미온적 대응에 대한 민심이 악화하자, 17일 떠밀리듯 김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연루된 송영길 전 대표와 윤관석·이성만 의원이 자진 탈당을 한 것도 유사한 사례다.

민주당은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당시 최대 이슈였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던 의원 12명에 대해 탈당을 권유했다. 이 중 비례대표였던 윤미향·양이원영 의원에 대해선 탈당 시 의원직 상실을 우려해 출당 징계를 내렸고, 양이 의원은 이후 관련 의혹이 검찰 불송치 결정이 내려지면서 4개월 만에 복당했다.

이동학 전 최고위원과 박성민 전 최고위원 등 더불어민주당 청년 정치인들이 1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최근 돈 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의혹 등에 대해 사과하는 당 쇄신 촉구 기자회견을 마치며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략적 결정보다 상시 가동 등 신뢰성 확보해야

당 윤리기구가 이처럼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결정을 반복하면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의힘 영남권의 한 의원은 "여야가 쇄신이 시급할 때 '급한 불 끄기' 용으로 윤리위를 가동하곤 한다. 평상시에는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국민들이 원하는 건 결국 태도인데, 윤리기구의 결정도 총선을 앞두고 이런 민심에 호응하려는 것"이라며 "상시 가동을 통해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진단도 비슷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당의 윤리기구가 의원들의 도덕성을 강제하고 있지 못하다. 지도부의 기강 잡기용으로 전락하거나 선택적 징계로 존재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며 "정치적 계산보다 국민 보편적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지도부와 친소관계가 윤리위원 선정에 영향을 준다는 의심이 크다"며 "신뢰감 있는 외부인사들 위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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