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정치권 갈등으로 번진 ‘영화관 철거 논란’
1960년대 강원 원주시에 지어진 아카데미극장의 철거 문제를 놓고 원주 주민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는 지역 정치권 갈등으로 비화되면서 원주시의회가 파행 운영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1963년 원주시 평원동에 문을 연 단관(單館) 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은 2006년까지 43년 동안 운영됐다. 단관 극장은 말그대로 스크린이 한 개밖에 없는 극장이다. 원주 지역에는 아카데미극장을 비롯해 총 5개의 단관 극장이 있었지만 2005년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오면서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지금은 아카데미극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곳은 모두 헐렸다.
아카데미극장도 철거 직전까지 갔었는데, 하지만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극장을 보존하자는 시민들의 뜻이 모아지면서 일단 멈췄다. 원창묵 전임 원주시장(더불어민주당 소속)도 아카데미극장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자며 보전하는 쪽으로 힘을 보탰다. 결국 원주시는 작년 1월 시 예산 32억원을 들여 아카데미극장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다.
그러나 원강수 현 시장(국민의 힘 소속)이 취임한 뒤 원주시가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보존할 가치가 적은 데다 유지관리비가 많이 나가고, 노후화에 따른 건물 붕괴 위험까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대신 극장을 철거한 부지에 야외공연장과 주차장 등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원주시 관계자는 18일 “건물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전면 리모델링이 필요한 상황인데 리모델링에만 60억원 이상 사업비가 들고, 연간 유지관리 비용만 10억원 이상 든다”며 “정부로부터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도 인정받지 못해 계속 보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에 지역사회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시민 모임인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는 “극장 보존은 지난 시장 때 의견 수렴 등 합법적 절차를 거쳐 추진해온 일”이라며 극장 철거에 반대했다. 이들은 “시장이 바뀌자 갑자기 정책을 바꾸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밀어붙이려 한다”며 “아카데미극장은 그저 낡고 오래된 극장이 아니라 원주 문화의 상징적인 곳”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정책토론회를 통해 아카데미극장 보존 여부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원주 지역 3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원주를 아끼는 사람들’과 원주소상공인연합회 등은 “건물 구조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붕괴 우려가 커 건축에 준하는 보강 공사가 필요한데 이는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철거를 촉구했다. 이들은 “극장 부지가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으로 활용되면 이 일대가 문화예술거리로 거듭나 침체된 구도심 상권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강원도 문화유산 관련 지원사업에서 불가 판정을 받는 등 근대문화유산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극장을 보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 문제는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이 “극장 철거 예산안이 시 공유재산 심의 등 절차 없이 상정됐다”고 주장하면서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과 대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임위와 예결위가 줄줄이 파행을 겪었고, 올해 첫 추가경정 예산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원강수 원주시장은 지난 4일 추경 예산안 처리가 불발되자 “언제 무너질지 모를 폐쇄된 석면 건물인 아카데미극장에 매몰돼 예산안 심의를 방해한 민주당 의원들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유감을 표했다.
원주시의회는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임시회를 열고 1710억원 규모의 2023년도 제1차 추경 예산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임시회 파행의 원인이 됐던 아카데미극장 철거 예산안 등이 포함돼 있어 처리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이재용 원주시의회 의장(국민의힘 소속)은 “시의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시민들께 송구하다”며 “추경 예산안 심의 보류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은 후 열리는 이번 임시회에서 추경 예산안 심의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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