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체감하는 전기요금 상한제의 무게[특파원칼럼/조은아]

조은아 파리 특파원 2023. 5.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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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에너지 위기가 극심한 독일을 찾았다.

독일 정부는 결국 에너지값 상승을 못 견뎌 이달이 돼서야 상한제 계획을 밝혔다.

과거 독일에서 에너지 요금 상한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제 지난해 여름 거리에서 인터뷰한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원으로 가스 전기 석탄 태양광을 다양하게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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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억누른 佛 정부, 기업에 소송당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정책 더 다양해져야
조은아 파리 특파원
지난해 여름 에너지 위기가 극심한 독일을 찾았다. 그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서방 경제 제재에 대항해 독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갔다 풀었다 하며 무기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다 보니 가스 가격은 일찌감치 치솟았고 전기 석탄 같은 다른 에너지값도 뛰고 있었다.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 폭만 봐도 독일이 처한 위기는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사이트 유로스탯에 따르면 지난해 말 독일 주택용 전기요금은 전년 대비 83% 급등했다. 한국에서는 전기요금 인상률(17.9%)이 크다고 난리지만 독일 전기요금 인상률은 그 5배 수준인 것이다.

독일은 이 에너지난을 어떻게 넘기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국처럼 에너지 요금에 상한을 둬서 요금을 억제하는 건 기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 만하임 에너지기업 MVV에서 들은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MVV 임원은 “독일 정부가 에너지 요금에 상한을 두면 기업과 소비자가 여러 변호사를 앞세워 정부를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를 올리지 못하면 에너지 기업은 손해가 막심해지고, 그 적자를 재정으로 메우게 되면 결국 혈세 낭비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한국전력공사가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임원 얘기가 터무니없지만은 않았다. 프랑스에선 정부가 전기요금 상한제를 명령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프랑스 전력 70%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운영하는 프랑스전력공사(EDF)는 지난해 8월 자사 홈페이지에 “정부에 상한제 명령을 철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당당하게 공개했다. 전기요금 상한제 때문에 생긴 83억4000만 유로(약 12조 원) 손실을 보상해 달라고도 했다. 전기요금 상한제는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정책 수단인 것이다.

독일 정부는 결국 에너지값 상승을 못 견뎌 이달이 돼서야 상한제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의회는 ‘시장을 왜곡하는 결정’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정부가 방침을 밝혔지만 유럽의회 심의도 거쳐야 한다.

과거 독일에서 에너지 요금 상한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MVV 임원이 들려준 상한제 논의 당시 소비자 반응도 뜻밖이었다. 상한제로 에너지값 상승이 덜해지면 소비자가 반길 법한데 오히려 반대했다는 것이다. 가구마다 에너지 소비량과 사용 패턴이 다른데 특정 에너지 가격에만 상한을 두면 누군가에겐 유리하지만 누군가에겐 불리해 불공평하다는 얘기였다. 실제 지난해 여름 거리에서 인터뷰한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원으로 가스 전기 석탄 태양광을 다양하게 쓰고 있었다. 저마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한 방정식을 푼 결과였다.

소비자 스스로 에너지 비용 절감 방식을 고민할 수 있는 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다양한 정책이 있어서다. MVV 본사를 방문한 날 건물 꼭대기 전광판과 광고판에는 ‘에너지를 절약하면 환급금을 준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향후 2년간 에너지 소비량을 일정 수준 이상 줄이면 최대 160유로(약 23만 원)까지 환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독일뿐만 아니다. 유럽 각국에서는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독일에선 도심 유명 건축물 조명을 껐고, 프랑스에서는 정전 시범 훈련을 했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한제 말고 에너지 절약 필요성을 절실히 알릴 어떤 제도를 내놨는지 묻고 싶어졌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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