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지역·필수의료 인력 확충 위해 의사 수련제도 개혁해야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2023. 5.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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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의료보장혁신포럼에서 전문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저수가(건강보험으로 병원에 지급되는 진료비)로 유지되는 건강보험의 체계가 한계에 이르렀다.”

의료계는 필수의료 분야에 지원하는 의사들이 줄고 지방 병원들이 의료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이렇게 진단한다. 이러다 의료 체계 붕괴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시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해야 된다는 해법도 있고, 신규 의대를 신설하거나 기존 의대 정원을 증원해 장기적으로 의사 수를 늘리자는 안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 명의 전문의를 키우는 데 8억6700만 원이 소요되고 신규 의대를 만드는 데만 병원 시설을 포함해 수천억 원이 들어간다. 시간도 걸리지만 비용도 상당하다.

해법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필수의료 분야에서 점점 의사 지원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상반기 전공의 충원율을 보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등 인기 학과의 경우 모집인원보다 지원인원이 많아 전공의 충원율은 150%를 넘어간다. 반면 필수의료 분야의 비인기 학과인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등은 매년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필수의료에 해당되는 신경외과가 올해 상반기 104명 모집에 137명이 지원해 지원율이 129%에 이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이들은 전문의를 딴 뒤 디스크나 허리디스크 등을 진료하는 의원을 개원하기 위해 척추질환을 세부 전공으로 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는 신경외과 의사의 10%에 불과하다. 특히 전국에 머리를 여는 수술인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는 113명뿐인데 그나마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인력이 대부분이다.

MZ(밀레니얼+Z세대) 의사로 갈수록 돈이 안 되거나 힘든 분야의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의를 포기하고 일반의로 개원해 비보험 위주의 진료를 하는 의사도 늘고 있다. 심지어 3년을 복무해야 하는 공보의나 군의관 생활보다는 훨씬 기간이 짧은 의무병을 택하는 의대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의대 증원보다는 전공의가 수련하는 데 필요한 환경을 국가가 지원하는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대응해 의료 교육 과정의 개편과 질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16일 열린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의료보장혁신포럼에서 조민우 울산대 의대 교수는 현 시점에서 인턴 및 레지던트 과정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구 수 대비 의료인력을 추산하는 것보다는 필요한 의료 수요를 적절히 추정해 지역에 의사를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일차 의료를 위한 수련 과정을 2년으로 하고 이 과정은 정부 등 국고 지원을 통해 해결하자”고 했다. 이런 접근법은 이미 영국 일본 미국 독일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인턴을 없애고 2년의 수련 과정을 통해 임상전문의 자격증을 주되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신경외과 흉부외과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등 세부 전공은 추가 2년으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5년인 인턴-레지던트 과정이 4년으로 줄어든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도 의대 증원이나 신설 같은 다른 접근법에 비해 부담이 덜하다. 더욱이 정부가 3000여 명의 전공의 인력을 직접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 골고루 전공의 인력을 파견하면 지방의 부족한 의사 수뿐만 아니라 필수의료 인력 부족 현상을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일차 의료의 질도 향상된다.

전문의 선호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선 의사들도 2년만 하면 전문의를 받게 되니 환영할 만하다. 일본의 경우 의사면허를 취득한 뒤 개업하기 위해서는 2년간의 공용과정을 통해 수련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배운다. 이러한 과정은 정부가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판단해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은 모두 정부가 제공한다.

한희철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은 “우리 정부가 의사의 양성과정보다는 민간 의대에서 양성된 의사들의 관리와 활용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제 우리나라도 공공성이 요구되는 의료를 위해 민간의 의사양성 과정에 대한 정부 및 사회의 투자와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민간 의료 자원을 정부가 활용하기만 하지 공공 자원을 투자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해묵은 인턴-레지던트-전문의 개념을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시대가 변하는 만큼 필수인력 확보를 위한 의사 수련제도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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