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72) 종로구 삼일빌딩

기자 2023. 5.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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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근대화의 상징…손바뀜이 많은 만큼 곡절도 많다
종로구 삼일빌딩 1971년(좌) 2023년(우).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두 사진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건물은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의 청계천 변에 있는 삼일빌딩이다. 지금은 주변의 고층빌딩들로, 별로 눈에 띄는 건축물이 아니지만, 한때는 한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1970년 완공된 삼일빌딩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김중업의 작품이다. 김중업은 독일 근대 건축의 거장인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미국 뉴욕의 시그램 빌딩과 유사하게 철제 뼈대에 외벽을 유리로 두른 건물을 지었다.

건물의 주인은 프로야구 원년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을 운영하던 삼미그룹이었다. 이 그룹의 주력산업이 금속이었으므로, 기업 이미지에 어울리게 철을 주재료로 건물을 지은 것 같다.

삼일빌딩이란 이름은 지상 31층이어서 붙였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나, 3·1운동에서 유래한 삼일대로(三一大路) 변에 건물이 위치해 지었다는 설명도 있다.

1971년 사진을 보면, 거인처럼 서 있는 삼일빌딩 앞으로 기하학적 형태의 청계 고가로가 지나고 있다. 날렵하게 솟아오른 두 건축물은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이를 담은 사진은 한국과 서울을 소개하는 선전물에 빠지지 않고 실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삼일빌딩 꼭대기 층에서 자신의 통치 아래 날로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내려다봤다는 일화가 있다. 1971년 개봉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도 욕망의 상징물로 삼일빌딩이 여러 번 등장한다. 배우 윤여정씨가 열연한 주인공 명자는 식모살이하겠다고 친구 경희와 함께 서울로 오는데,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경희가 “서울엔 31층 빌딩이 있대. 그걸 쳐다보고 살겠네”라고 하자, 명자는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라고 대답하며 웃는다.

그러나 삼일빌딩의 명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78년 롯데호텔이 완공되면서 최고층 건물이란 타이틀을 내주었고, 경영난을 겪던 삼미그룹이 1985년 산업은행에 매각한 이후 그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2000년대에는 건물 앞을 답답하게 가로막았던 청계 고가로가 사라지고, 대신 어설프게 복원된 청계천이 흐르게 되었다.

2023년 사진은 2020년 리모델링을 끝낸 모습으로, SK 계열사의 간판이 붙어 있다. 서울시는 삼일빌딩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였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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