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나무가 아파요”… 식물병원 문열자 2030 줄선다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반려식물 병원. 신영은(28)씨가 빼꼼히 문을 열더니 이파리가 딱 여섯 장 남은 30cm 높이의 ‘무늬 나한백’ 화분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살아날 가망이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의사 선생님’인 주재천 식물병원장이 이리저리 둘러본 뒤 진단했다. 안타깝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 병명은 과습으로 인한 ‘생리 장애’.
신씨는 “동네 화원 주인 말로는 뿌리가 남아 있으니 살릴 수 있다던데...” 하며 우물쭈물했다. 주 원장은 화분에서 나무를 뽑아 뿌리를 직접 보여주며 “뿌리가 남아는 있지만 흰 뿌리가 하나도 없고 검은 뿌리뿐이다. 영양분을 빨아들일 빨대가 다 막힌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 선고에 앞서 신씨는 “1년 반쯤 전 친언니에게 취직 선물로 사준 화분이었다”며 “소중한 추억을 없애고 싶지 않아서 유튜브를 보고 식물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다”고 했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가 지난달 10일 문을 연 ‘반려식물 병원’이다. 농학과 원예학, 조경학을 전공한 농업기술센터 팀장이 ‘식물 의사’를 맡아 치료와 처방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문을 열자마자 ‘식집사(식물을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이라는 뜻)’들 사이에선 빠르게 소문이 났다. 지난 15일까지 35일 동안 식물 환자 331가 이곳을 다녀갔다. 상담 전화도 하루 15통 정도 꾸준히 걸려온다.
특히 청년층 호응이 뜨겁다고 한다. 이곳 지난 4월 한 달 동안 찾은 손님 56%가 2030세대였다.
반려식물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꾸준히 느는 추세다. 2017년 1만1906원에서 2021년 1만2386원까지 뛰었다. 국내 최대 화훼 도매시장인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의 관엽식물·난 경매 거래액도 늘었다. 2019년 498억, 2020년 472억, 2021년 559억으로 꾸준히 늘다가 지난해엔 594억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대부분 ‘식집사’는 아파트 등 실내에서 식물을 기른다. 햇빛과 바람이 부족하면 증산작용이 잘 일어나지 않아 식물이 흙 속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이기 어려워지고, 뿌리가 무를 가능성이 커진다. 이곳 식물병원을 찾는 화분 10개 중 8개가 과습으로 뿌리가 심각하게 무른 상태로 온다고 한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 진찰만으로 ‘고사’ 판정을 내린 식물도 지난달 한 달 동안 24개나 됐다. 그 밖에도 ‘식물 좀 키운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요소가 온도. 주 병원장은 “식물마다 좋아하는 온도에 두어야, 생장이 이루어지고 뿌리가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엔 이곳 말고도 동대문구·종로구·양천구·은평구 등 4곳에 식물 클리닉이 있지만, 입원 병동이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입원실은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비닐하우스에 마련됐다. 아픈 식물을 최장 3개월까지 맡길 수 있어 세균 감염 등 비교적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이 찾는다.
가장 오래된 환자 중 하나는 지난달 입원한 서양란 ‘막실라리아’. 주인이 군에 입대한 사이 가족이 돌보다 뿌리 과습으로 세균병을 얻었다. 주 병원장은 “대부분 되살려 보내지만 가끔 ‘사망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해야 할 때면 마음이 무척 아프다”면서 “말도 못 하는 식물이지만 죽으면 슬프고 되살아나면 너무나 사랑스럽다. 키워본 사람만 그 마음을 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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