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허약한 놈, 이상한 놈, 황당한 놈
최근 수개월간 ‘좋은 정부 만들기’란 제목의 이 칼럼에 줄곧 국민연금 개혁 얘기만 썼다. 내 연구 분야가 복지와 재정이다 보니 이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유독 국민연금에만 집중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복지와 재정 분야에서 최근 가장 핫한 이슈가 연금 개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게 더 중요한데, 우리의 공적연금은 정말 문제가 많고 이를 방치하면 나중에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었다.
이 칼럼에서 수차례 언급했지만, 우리 정도 혹은 그 이상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 중 우리만큼 취약한 ‘국민’ 연금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받는 것에 비해 가장 적은 보험료를 납부한다. 보험료 안 내는 사람의 비율은 가장 높고, 보험료 납입 기간은 가장 짧다. 또 미수급권자 비율과 급여액의 소득과 성별 격차는 가장 심하다. 그 결과 노인 소득 중 연금소득 비중은 가장 작고, 국민 평균소득 대비 노인 소득은 가장 떨어진다. ‘국민’ 연금이라는 명칭이 민망하다. 국민연금의 문제점은 그간 많이 얘기했으니 이번에는 기초연금 얘기를 해 보자.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공적연금을 구성한다. 2023년 지출액은 22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엄청난 액수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과연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지 따져보자.
노년 소득 보장의 목적은 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근로 시기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근로 시기 생활 수준 유지 기능은 우리의 국민연금 같은 소득비례연금이 담당한다. 기본생계보장을 담당하는 방식은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모든 노인에게 정액의 보편적 기본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캐나다가 대표적인데 많지는 않다. 또 하나는 저소득 노인에게 최저보증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모두가 국민연금에 가입하게 하고, 가입자에게는 최소 얼마 이상의 연금을 보장하는 것이다. 스웨덴이 대표적인데 역시 많지는 않다. 다수의 국가는 소득비례연금을 통해 노후 대비를 하되, 이것이 어려운 소수 빈곤 노인들에게 공공부조를 통해 최저소득을 보장한다.
우리의 기초연금은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다. 노인의 70%에게만 지급하니 보편적 기본연금은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하니 최저보증연금도 아니다. 자산조사를 통해 70% 노인에게 지급하므로 공공부조에 가깝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도 아니다. 공공부조는 기본적인 생계보장이 목적이므로,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소득이 지급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기준은 중위소득의 30%이다. 이에 미달하는 가구에 차액을 지급한다. 하지만 기초연금은 ‘노인 70%’라는 대상 규모를 미리 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소득수준을 조사해서 지급기준으로 삼는다.
우리의 노인 빈곤율이 높다지만 그래도 전체 노인의 40% 이하이다. 그런데 기초연금 수급 대상은 전체 노인의 70%다. 그래서 수급자 중에는 중산층도 제법 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어느 노인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공시지가 7억원인 집을 소유하고 2000만원의 통장 잔액이 있으며 월 300만원의 근로소득을 올린다. 이 부부를 저소득 노인가구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초연금을 수급한다.
지금도 일부 수급자는 결코 저소득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초기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미 65세 이상 노인층에 편입되었고, 머지않아 586세대도 노인집단에 속하게 된다. 베이비부머와 586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여유 있는 분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지금처럼 70%의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면, 중산층의 상당수가 수급자가 된다. 그렇다면 대체 기초연금의 목적은 무엇일까?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보면 기초연금의 목적은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분들, 국민연금 수급권이 없거나 있더라도 연금액이 작은 분들의 노후 생활을 돕고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70%의 노인에게 지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빈곤 해결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려면 정말 빈곤한 노인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노인에게 보편적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국가도 있는데, 70%에게 지급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지금처럼 70%에게만 지급할 바에야 차라리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단, 그 경우는 국민연금 급여방식이 바뀌어야 하며 재원 조달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보편적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국가들은 우리의 국민연금 같은 제도가 없다. 네덜란드는 소득비례 공적연금이 없으며, 캐나다는 있지만 급여액이 적다. 일본은 보편적 기초연금 재원의 절반을 보험료로 충당하며, 소득비례연금은 임금근로자에게만 적용한다.
70%의 노인에게 지급하는 것은 기초연금 목적과 맞지 않는다. 그리고 저소득층을 위한 연금이면서 수급 대상자 규모를 일정 비율로 미리 정하는 방식은, 다른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 없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상황에 적합하면 칭찬할 일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더 이상 우리 상황에 적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때문에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데 있다.
연금의 노후소득보장은 국민연금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기초연금도 필요하며, 퇴직연금도 중요하다. 다양한 연금이 함께하는 노후소득보장의 효과성을 높이려면 제도 간 정합성이 중요하다. 현행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은 전혀 아니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중추 역할을 하고, 스스로의 노후 대비가 부족한 빈곤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이 기본보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퇴직연금은 국민연금만으로 부족한 근로 시기 생활 유지를 보완해야 한다. 이런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우리 국민연금이 너무 허약하다. 기초연금은 기본보장이라고 하기에는 참 이상하다. 또 국민연금을 보완한다고 보기에는 퇴직연금의 실상이 너무나 황당하다. 글쎄, 이제 이상한 기초연금도 다뤘으니 다음번 칼럼에는 황당한 퇴직연금 얘기를 해야겠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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