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코로나19가 식탁에 남긴 흔적들
지난 11일 코로나19 비상사태가 끝났다. 2020년 1월 이후 40개월 만이다. 코로나19의 긴 터널 속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 하나가 음식이다. 이동 제한과 격리를 수반한 전염병이 산업혁명 이후 큰 틀을 유지해오던 음식문화의 ABC를 바꿨다.
드라마틱하게 바뀐 음식문화의 핵심은 배달음식이 확대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배달음식은 미국이나 동북아처럼 특정 지역에서 발달한 지역문화였다. 하지만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이동이 제한되면서 배달음식을 전 세계에서 주요 음식으로 변신시켰다.
배달음식을 경계하던 나도 배달음식을 이용했다. 코로나19가 무서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2020년 봄, 팬데믹 이전 즐겨 먹던 맛집 음식을 - 비록 플라스틱 포장이지만 - 집 안에서 안온히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오프라인 식당이 온라인으로 재편되면서 규모가 작은 영세 음식점이 사라졌다. 집 주변 정겨운 단골집이 하나둘 문을 닫아 아쉬웠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에서 양을 키우려 농민을 토지에서 쫓아내던 엔클로저 운동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식당의 온라인 재편은 전 세계적 추세였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했던 나는, 코로나19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배달음식을 본 적이 없었다. 미국식 효율 대신 음식 본연의 맛과 멋을 추구하는 이탈리아의 독특한 문화 덕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한풀 꺾인 2022년 2년여 만에 간 이탈리아에서 많은 현지인들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에스프레소 빼고는 문앞으로 다 배달해주었다.
하나 더 이탈리아에서 놀란 것은 저렴한 음식에 대한 소비자의 집착이었다. ‘거지의 감자’라는 5유로짜리 오븐 감자구이 집이 문전성시였다. 가보면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청년층뿐 아니라 40~50대 이상의 중장년층도 많았다. 세계적 공급망 혼란은 반도체뿐 아니라 식량에도 적용됐고 외식 물가가 폭등한 탓이었다.
물가 폭등과 소득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이후 소비자들은 음식에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를 고민하게 됐다. 알코올 음료 대신 무알코올 음료를, 육식 대신 동물복지와 채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자신과 지구의 건강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고, 둘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체우유, 대체치즈, 대체단백질 같은 새로운 테크 푸드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여행 제한으로 외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급증했다. 전에 없이 이국적인 음식에 대한 소비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닭라면 소스와 김치 파우더가 해외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포르투갈, 우루과이, 조지아 와인처럼 새로운 지역의 와인이 관심을 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어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이 순간, 대중은 좀 더 저렴한 음식을 찾을 수밖에 없다. 건강하고 안전한 데다 가격까지 싼 혁신적 음식을 찾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떤 음식이 역사상 가장 까다로운 입맛과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엔데믹 시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지 궁금하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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