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택배기사’와 ‘K디스토피아’의 위기

김선영 기자 2023. 5. 19.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사진)가 지난 12일 공개됐다. 동명의 웹툰에 기반한 이 작품은 혜성과의 충돌로 종말을 맞이한 세계의 이야기를 그린다. 혜성 대충돌 당시 대부분의 대륙은 물에 잠겼고 한반도는 사막으로 변했다. <택배기사>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로부터 40년 뒤, 사막화와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고통받는 한반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김선영 TV평론가

종말 이후의 한반도는 산소 권력을 중심으로 재편된 세상이다. 산소호흡기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해진 세상은 산소를 독점한 초거대기업을 출현시켰고, 생존자들은 산소 공급량에 따라 코어, 특별, 일반 구역 주민으로 나뉘어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 구역의 바깥에는 최하층 난민들이 존재한다. 구역 이동이 금지된 난민들은 오염된 공기 안에서 각종 질환과 굶주림과 차별에 시달리는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택배기사>는 공고화된 계급 질서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장르적 상상력으로 구현하는 한국형 디스토피아물의 주요 경향 안에 위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배경을 조선으로 옮겨 신계급사회 한국을 비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2019)이 이 같은 경향의 선두에 놓여 있다. 계급 차별이 공고화된 뉴노멀 시대를 역시 좀비 아포칼립스물로 풀어낸 드라마 <해피니스>(tvN, 2021),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세계관을 데스 게임 장르에 녹여낸 <오징어게임>(넷플릭스, 2021) 등이 그 뒤를 잇는 대표작들이다.

한국형 디스토피아물의 뚜렷한 비판의식은 계급 양극화 심화가 전 지구적 이슈가 된 시대에, 이 장르군의 글로벌 흥행에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K디스토피아’라는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택배기사>도 같은 문제의식을 극화한다. 이 작품의 산소 권력은 지금 우리 시대의 자본 권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 깨끗하게 정화된 공기 속에서 종말 이전과 다름없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코어 구역 주민들과 산소조차 공급받지 못하는 난민들의 대조적 삶은 계급 양극화 심화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

문제는 익숙한 주제의식이 더 익숙한 이야기와 만나면서 드라마가 한없이 진부해진다는 데 있다. 거대악인 천명그룹의 대표 류석(송승헌)은 기존 사회파 드라마 속의 흔한 악역인 소시오패스 재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그려진다. 그에 맞서는 주인공 택배기사 5-8(김우빈) 역시 차별받는 약자를 구원하는 전형적 영웅으로 묘사된다. 공감과 이입을 이끌어내야 할 난민들의 비참한 삶은 5-8의 분노와 영웅적 활약에 동력을 제공하는 장치로만 쓰일 뿐이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택배기사 선발대회와 동시에 진행된 난민 구역 테러 사건이다. 주민들의 시선이 생중계에 쏠린 사이 류석이 벌인 이 대량 학살극은 5-8과 그가 이끄는 저항단체 블랙나이트의 분노를 강화하는 데 쓰이고 바로 잊히고 만다. 난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뚝딱 할배(김의성)조차 다행히 집에 머물러 목숨을 건진 모습만 강조되고, 학살극에 대해 이렇다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들이 이유도 모른 채 한순간에 사라졌음에도 추모하는 에피소드조차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소름 끼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계는 제2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난민 사월(강유석)의 서사가 약화되면서 한층 두드러진다. 원작과 달리 5-8이 주인공으로 각색되면서 비중이 줄어들고 성별도 소년으로 바뀐 사월은 5-8의 영웅적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보조적 역할로만 머문다. 예컨대 택배기사 선발대회 에피소드가 그러하다.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에피소드임에도 불구하고 액션 활극적 재미만 강조되어 사월의 성장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 5-8이 주도하는 류석과의 대결 플롯과도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이 에피소드는 <오징어게임>의 데스 게임적 요소를 재연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일 정도다.

<택배기사>의 한계는 단순히 한 작품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K디스토피아물의 사회비판적 주제가 그저 하나의 성공 공식처럼 관습화되고 있다는 경고로 보여 더 우려스럽다. 미래를 안이하게 상상하기보다 현재를 주의 깊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선영 TV평론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