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마구잡이 추경, 못 쓴 돈이 13조
문재인 정부 시절 추가경정예산 관련 당정 협의를 하면 항상 마무리는 “다음 추경 준비합시다”였다고 한다. 빚내서 돈 풀기 말고는 경제 정책이라고 할 게 없다 보니 달리 할 말도 없었을 것이다. 정권을 잃고 야당이 돼서도 그대로다. 세수 부족이 예상되자 더불어민주당이 대책으로 또 추경을 꺼내 들었다. 세수 부족분을 빚으로 메꾸자는 것이다. 이미 연초부터 별도로 30조원 추경을 요구한 상태라 적자 국채 규모는 이보다 커질 수 있다. 정부는 ”안 한다”고 밝혔지만 총선을 앞두고 추경 논의가 불붙으면 결국 여론에 끌려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재정을 경기 부양의 마중물로 삼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이는 예산을 필요한 곳에 제대로 ‘집행’했을 때 맞는 말이다. 문 정부 때 추경만 10번을 하면서 제대로 집행조차 못 하는 사업이 급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번 추경에 포함된 사업은 집행이 되든 말든 이듬해 본예산에도 계속 살아남았다. 지난해 예산안에만 잡혀 있고 경제에는 풀리지 못한 불용액은 12조9000억원에 달했다.
예산 사업의 질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전직 국회예산정책처장은 “추경 때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본예산에 못 들어갔던 사업을 집어넣는 수밖에 없다”며 “추경을 너무 많이 해서 패자부활전 정도가 아니라 ‘패자부활부활부활전’이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현재 정부는 사업을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집행이 힘들 사업의 예산을 줄여 될 만한 사업으로 몰아주는 것이다. 이런 판에 추경을 또 한다는 건 나랏빚을 더 내 쓰지 못할 주머니에 돈만 채워 놓는 꼴이다. 국가 채무만 늘지 효과도 거의 없다.
야당은 대기업 감세를 철회하고 재정을 더 풀자고 주장한다. 하루살이식 사고다. 빚내서 돈 풀기를 한 결과물은 ‘지역구 예산 ㅇㅇ억원 확보’ 플래카드뿐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탈모(脫毛) 추경’이란 단어까지 등장한다고 한다. 추경을 하면 돈이 어떻게 쓰일지 뻔하다.
정부는 이런 사정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여론을 지켜본다며 손 놓고 있다간 여름께는 추경안을 짜고 있을 것이다. 하반기면 본격적으로 총선 경선을 준비할 시기다. 지역구 예산을 노리는 여당 의원들도 추경 편성에 동조할 게 분명하다.
확장 정책은 재정 풀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해야 한다. 감세 또한 확장 정책의 하나다. 직접 재정을 풀 수도 있지만, 걷어야 할 세금을 깎아 줌으로써 재정을 푼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재정을 쓰는 게 곤란한 상황이니 기업의 창의를 북돋는 쪽으로 간다고 설명하는 게 낫다. 추경 하자는 말이 많이 들릴수록 내일은 어둡다. 쉽게 내뱉을 단어가 아니라는 걸 정부가 설득력 있게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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