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생물다양성이란 ‘바벨’
지난주 리움 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회 ‘WE’를 관람했다. 전시회 제목이 ‘우리’라니…. 전시장 입구엔 실물 같은 노숙자가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니 역전 광장이나 고가 아래서 배회할 법한 비둘기들이 천장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작가는 어디까지가 ‘우리’냐고 묻는 것 같았다.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전시 작품은 때론 기발하고, 때론 공격적으로 오감을 깼다. 구멍 속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밖을 바라보는 남성을 형상화한 작품과 이를 전시하기 위해 전시장 바닥을 깬 미술관의 취지가 내 안의 뭔가를 부수는 굉음을 내는 듯했다.
‘WE’는 1인칭 복수를 뜻하는 영어지만 한글로 번역되었을 때는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것 같다. WE는 ‘모두’를 뜻하는데 한글 ‘우리’는 모두라는 뜻도 있지만, 특정 그룹에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안으로 우리끼리 대동단결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우리 남편’ ‘우리 아내’처럼 우리를 모두의 의미로 쓰면 괴상해지는 것처럼, 종종 ‘한 울타리’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처럼.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열렸다. 생물다양성협약은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된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196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해 이행하고 있다.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당사국의 대표들과 국제기구,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30년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가 채택됐기 때문이다. 대기업 및 다국적 기업 등이 생산·유통 과정과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생물 다양성을 해치거나 위협하는지를 평가하고 재무적으로 공개할 것을 합의한 것이다. 이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최근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한 재무 공시 기준(TNFD) 초안이 공개됐다. 이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 공시 기준(TCFD)과 같은 수준과 구조여서 기업이 넘어야 할 문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극도로 취약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우선 생물다양성은 고사하고, 인간들끼리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다양성 빈국’에서 다른 생명체까지 인정하고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라면 그것이 설령 국제협약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근육이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성이라는 바벨을 들어올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전시회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어디까지가 ‘우리’인가. 같은 정당끼리는 ‘우리’인가. 다양성은 왜 단일성보다 더 경쟁력이 있는가. 생물다양성은 왜 국제협약까지 만들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걸까. 정답은 언제나 ‘하나’이고, 정답을 찾는 훈련만 받다 보면 이런 질문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자연 생태계는 다양성과 동의어다. 어쩌다 문명을 일구었으나 우리도 생태계의 한 점에 불과하다. 오는 6월5일은 유엔이 정한 환경의날이다. 환경 관련 영화라도 한 편 보면서 다양성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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