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장남의 무게
방학동의 김수영문학관에 가면 ‘우리 시의 가장 벅찬 젊음’인 김수영에 관한 죽음 일보 직전의 생생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서른에 떠난 김소월만큼이나 마흔일곱의 향년을 요절로 여길 만큼 뜻밖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김수영의 죽음이었다.
1968년 6월15일, 문우들과의 술자리에서 돌연히 빠져나와 귀가하다가 버스에 치여 의식을 잃고 다음날 아침 숨을 거둠. 급히 이송된 시인의 가슴 안주머니에서 나온 꼬깃꼬깃 접힌 메모지에는 시상이 아니라 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음. 여동생은 오빠는 죽음으로 비로소 오빠의 갑옷을 벗었다며 울었다고 함. 서울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수영. 시대와 가정의 위태로운 사정들과 싸워야 했던 그는 시인의 자리 못지않게 장남의 자리도 무겁게 여겼던가 보다. 대한민국 모든 장남들의 마음 한 자락을 살짝 엿보는 기분이었다.
시인의 좌우명인 ‘상주사심(常住死心, 늘 죽음을 생각하며 생활함)’을 적어놓은 액자 옆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남들이 귀중히 여기는 그래서 갖춰놓기를 원하는 것들을 그는 모두 못마땅해했다. 그는 부인이 사들이는 책장, 책상, 식탁, 의자 등을 지겨워했다.” 다리가 넷인 이런 것들을 시인은 경멸했을까. 대신 시인은 팔다리를 버리고 이목구비를 지워가는 바위를 좋아했던가 보다. “술에 취하면 밖에서 돌을 메고 들어온다”고 했다. 바람에도 휘청이는 육체의 가벼움을 알고 어쩌면 시인은 무거운 고민과 오래된 근심을 더 깊이 공부했던 것.
산에 간다. 우리 사는 세상의 깊이는 다 골짜기에서 흘러나간 것. 능선에 올라 정상에 접근하면 바위가 뚜껑처럼 닫혀 있다. 세계의 높이는 다 여기로부터 비롯된 것. 갈수록 경박해지는 세상에서 산과 돌들이 저기에 자리 잡지 않았다면, 이 세계가 어떤 형편에 놓였을지 아무도 모른다.
며칠 전의 대법원 판결 하나가 눈길을 끈다. 집안의 제사를 굳이 장남의 몫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나이순으로 그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것. 나는 형님들 덕분에 막내가 되었다. 장남인 친구들을 통해 맏이의 고뇌에 대해 건너들은 바가 있었지만 여태껏 그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야 했던 이들의 가슴이 돌 하나만큼 가벼워졌으리라.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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