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박병진 2023. 5. 1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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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이 파괴의 잿더미에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재정적 지원정책인 '마셜플랜'(Marshall Plan) 영향이 컸다.

이와는 별개로 독일의 경제 재건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과거사를 언급한 뒤 '국가 지도자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한·일 국교 수립을 권유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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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이 파괴의 잿더미에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재정적 지원정책인 ‘마셜플랜’(Marshall Plan) 영향이 컸다. 전범국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와는 별개로 독일의 경제 재건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초대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와 초대 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다.

파트너이자 정적이었던 두 사람은 독일 복구를 위해 미국식 자유경제나 소련식 계획경제와는 다른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꺼냈다. 성장과 분배에 일정부분 국가가 개입하는 경제철학이다. 새로운 경제시스템 덕에 독일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1950년부터 1960년까지 10년간 성장률이 연평균 8%를 기록할 정도였다. 아데나워가 서방연대로 닦은 정치 안정의 토대 위에서 에르하르트가 일군 ‘라인강의 기적’이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돌아선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12월 에르하르트를 만난다. 박 전 대통령을 맞이한 에르하르트는 3000만달러의 차관을 약속하면서 인적 담보를 요구했다. 그래서 약 1만8000명의 간호원과 광부들이 독일로 갔다. 그는 또 박 전 대통령에게 고속도로를 만들고, 제철회사를 건설하고, 정유공장을 세우도록 조언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과거사를 언급한 뒤 ‘국가 지도자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한·일 국교 수립을 권유했다고도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기반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한강의 기적’이 태동한 배경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기간 시설망은 송두리째 파괴됐다. 전 세계 기업들은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한국도 우크라이나 재건에 최적화된 파트너로 손꼽힌다. 마침 우크라이나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만나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우크라 재건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 경험이 우크라이나에 수출될 날이 멀지 않은 듯 보인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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