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총기 살인...美 청소년 ‘절망의 죽음’ 크게 늘었다
2020년 1∼19세의 사망률 10.7% 상승
미국에서 최근 몇년 새 20세 미만 미성년자의 사망률이 급증해 비상이 걸렸다. 의료와 안전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사망률은 1970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최근 2~3년간 이 추세가 뒤집혀 사망률이 갑자기 상승 전환한 것이다. 자연적인 질병이나 의도치 않은 사고는 변함없이 줄고 있지만, 약물 중독이나 자살 등 사회적 환경이 원인이 된 사망이 급격히 늘고 있다. 사회적인 해악으로부터 ‘청정 구역’이 돼야 할 미성년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절망의 죽음’이 점점 퍼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 시각) 버지니아주립대 사회의료센터의 스티븐 울프 명예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교통사고, 살인, 자살, 약물과용이 2019년 이후 미국 아동 및 10대의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0년 미국 1∼19세의 사망률은 전년 대비 10.7% 상승했으며, 2021년(잠정치)에도 8.3% 늘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에서 청소년층 사망률이 2년 연속 큰 폭 늘어난 건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이처럼 미성년자 전체 사망률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곳은 미국 뿐이다. 영국, 독일, 캐나다, 노르웨이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같은 기간 동안 젊은 층의 사망자 수가 일부 증가하기도 했지만, 특정한 연령대 또는 한 성별에 국한돼 일시적으로 나타날 뿐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4가지 원인별로 분석해 보면, 2019년 한 해 미국 1~19세 10만명 가운데 3.2명이 총기 등에 의한 살인으로 사망했는데, 2020년엔 4.2명, 2021년엔 4.6명으로 급증했다. 2019~2021년 자살은 3.5명에서 3.8명으로,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은 4.6명에서 5.7명으로 늘었다. 마약을 포함한 약물 중독 사망이 같은 기간 0.9명에서 2.2명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에서는 ‘절망의 죽음(death of despair)’ 현상이 전 연령층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용어는 원래 미국 45∼54세 백인 중년들의 사망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탄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유독 이 집단의 사망률만이 1990년대 후반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특이한 현상을 분석했다. 제조업 경제가 무너지면서 생산직에 종사하다 직업을 잃은 이들이 절망감, 박탈감, 소외감 등 심리적 요인 때문에 자살,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됐다. 이 때문에 디턴 교수는 이런 현상을 ‘절망의 죽음’이라고 이름붙였다.
보고서는 미성년자 사망률의 증가도 ‘절망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원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거리두기 정책’ 때문에 학교는 물론 각종 운동·여가 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대면 활동이 줄어들자, 또래 친구들과 교류를 할 기회가 줄어든 청소년들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가 크게 유행하며, 성인 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 9680명(잠정치)을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근 몇 년 간 가파르게 증가했는데,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전년 대비 30%, 16% 늘어났다. 미국 보건 비영리단체 카이저패밀리재단(KFF)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펜타닐로 인한 24세 이하 사망자가 2019년 3683명에서 2021년 6531명으로 2년만에 약 77% 증가했다.
미국의 공공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종식돼도 미성년자들의 사망률 상승세가 꺾이기 쉽지 않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청소년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빠르게 소셜미디어로 대체되기 시작해, 또래 친구들과 실제로 마주하고 소속감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울프 박사와 함께 이 보고서를 작성한 프레데릭 리버라 워싱턴대 교수는 “미성년자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추세는 계속 지속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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