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은 나쁘지만…한국에 덜 나쁜 핵이 있다면 ‘전략핵잠수함 보유’[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기자 2023. 5. 18. 22: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2) 나쁜 핵, 덜 나쁜 핵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미국에 ‘핵’을 안겨준 오펜하이머
2차 대전이 끝난 후 했다는 말
“내 손에 피가 묻은 것 같습니다”
조선인이라면 그렇게 말했을까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이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은 물리학자가 어떻게 전쟁을 끝내고 인류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극적인 사례였다. 프로젝트의 과학 분야 책임자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써서 2006년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던 오펜하이머 전기의 제목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였다. 미국에 새로운 ‘불’을 가져다줬으니 오펜하이머의 업적에 가장 어울리는 작명이지 싶다. 이 책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이기도 하다.

물리학자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긴 했으나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살상무기라는 괴물을 세상 밖으로 꺼낸 데 대한 찝찝함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전쟁이 끝난 뒤 오펜하이머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제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조선의 과학자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더라면 아마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전범서 총리가 된 기시 노부스케
일본의 핵무장 꿈꾸며 원전 늘려
이젠 플루토늄 보유량 50톤 육박
핵무기 7000발 생산 가능한 규모

역사상 유일하게, 그것도 두 차례나 핵공격을 당하고 패망한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행위와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사죄하기보다 핵무기의 피해자로 코스프레하는 한편 자기들도 핵에너지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 주역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외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였다. 기시는 전시 도조 내각의 상공대신을 지낸 인물로 전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으나 석방되었고 이후 일본 총리까지 오른다. 그의 동료 각료들을 포함해 A급 전범 7명은 사형에 처해졌다. 이런 이력이 있으니 기시 입장에서는 일본이 핵무기를 빨리 개발했으면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을 것이다.

기시가 원자력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스스로도 말했듯이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 평화적 이용뿐만 아니라 무기로서의 이용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본에는 이후 50기가 넘는 원전이 들어섰다. 원자력의 무기적 활용이라는 기시의 꿈도 헛되지 않아 일본 안팎으로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양은 50t에 육박한다. 플루토늄239는 주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얻는데 6~8㎏만 있으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 산술적으로는 약 7000발의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양이다. 미국은 미·일 원자력협정을 통해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를 인정하고 있다. 전범국가가 위험물질을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는 현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반면 우리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2015년 개정협정에 의하면 미국과의 서면합의가 필요하다. 한·미·일 3국 사이 ‘서열’은 이런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인간들 사이 역설은 일본을 잠재적인 핵무기 대국으로 키웠지만 자연의 역설은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을 집어삼켰다. 핵무기로 패망해 핵으로 일어서려 했던 일본이 이번에는 핵발전소 사고로 다시 주저앉은 것이다. 참사 12년이 지난 지금도 후쿠시마 사고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본은 빠르면 올여름 원자로에서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는 데 사용한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많은 방사성 핵종 중 국내외에서는 오로지 삼중수소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의 언론플레이가 성공한 것 같다. 삼중수소가 아무리 유해해도 대량의 물로 희석해서 방류하면 뭐가 문제냐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팩트만 우선 지적하고 싶다. 일본에서 계획하는 삼중수소의 방류 농도는 ℓ당 약 1500㏃(베크렐)이다. 이 값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음용수 기준인 ℓ당 1만㏃의 7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미국 음용수 기준인 740㏃의 2배가 넘는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그 기준이 100㏃에 불과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마실 수도 있겠으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마 이 물을 마시진 않을 것이다.

또한 오염수가 방류된 뒤 바닷물에 희석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방류 지점에서 가까운 곳의 해양생물은 높은 농도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삼중수소가 생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먹이사슬을 타고 어떻게 농축되는지, 우리 해역의 생물들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보수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안보란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일본을 향해 오염수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왜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질문에 일본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핵은 무기든 발전소든 인류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에서 좋은 핵은 없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몰락시킨 리틀보이와 팻맨 덕분에 우리도 해방되었지만 그 핵무기로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한 것도 사실이다. 인류 역사에서 세 번째 핵무기는 영원히 사용되지 않길 바란다.

미국에 종속된 한국은 꿈도 못 꿔
윤 대통령 ‘핵 공유’는 비현실적
‘나쁜 핵’이라기보다 ‘이상한 핵’

가장 이상한 핵은 윤석열 대통령의 핵이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하기로 했다. 협의체 운용의 일환으로 미국 전략핵잠수함 등을 한반도에 정기적으로 전개한다고 한다. 용산에서는 이를 두고 “사실상 핵 공유”라 논평했지만 워싱턴은 그에 즉각 반박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략무기를 통제하는 버튼을 다른 나라와 공유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전략핵잠수함이 한반도 주변에 전개된다고 해서 북한 핵을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될까? 미국이 보유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은 핵발전을 동력원으로 추진력을 얻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개 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트라이던트2를 20기나 싣고 다닌다. 핵탄두 하나가 도시 하나를 날릴 위력을 갖고 있으니까 이런 잠수함 한 대면 적국 도시 수십 개를 동시에 초토화할 수 있다.

그런데, 트라이던트2의 사정거리는 1만㎞가 넘는다. 태평양 어디에서든 북한에 핵무기를 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을 핵공격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를 보복하기 위해 미국의 전략핵잠이 한반도까지 달려와서 트라이던트2를 날리는 것이 빠를까, 아니면 잠수함이 있는 곳에서 곧바로 발사하는 것이 빠를까? 북한이 핵공격을 할 때 마침 우연히 전략핵잠이 한반도 인근에 있다 해도 시간적 이득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태평양 끝에서 트라이던트2를 날리더라도 30분 이내에 북한까지 도달한다.

애초에 전략핵잠의 전략적 가치는 기밀성에 있다. 핵보유국들 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내가 상대방을 핵공격하면 상대방의 보복 핵공격으로 자신 또한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공포의 균형이라 한다. 설령 적국이 선제 핵공격으로 아군의 지상 미사일기지나 공군기지를 모조리 없앤다 하더라도 바다 깊숙이 잠항 중인 전략핵잠을 무력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략핵잠의 2차 보복공격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략핵잠은 상호확증파괴를 담보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복공격을 위한 핵전력이 적국의 선제공격으로부터 온전히 살아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략핵잠은 바로 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전략핵잠의 작전수행능력은 평소에 공개적으로 과시해야겠지만 위치는 절대로 노출돼서는 안 된다. 전략핵잠이 한반도에 정기적으로 정박한다는 것은 그만큼 전략핵잠의 전략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셈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전략핵잠이든 전략폭격기든 모두 미국의 자산이라 우리에게 발사 버튼을 누를 권한이 없다. 우리 운명이 더욱 미국에 종속될 뿐이다. 그렇다면 전혀 방법이 없을까?

북한과 강대국 위협 대응 위해선
핵추진잠수함이 그나마 현실적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5월 바이든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고 우리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완전히 없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부에서는 국산 SLBM과 괴물미사일이라는 현무4를 선보였다.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북한에 충분히 보복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SLBM을 싣고 다닐 수단으로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는 것이다. 적재한 무기는 재래식이더라도 원자력으로 동력을 얻는다면 잠항능력이나 작전수행능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은 현실적으로 미국 동의 없이 손에 넣기 어렵다.

미국과의 협의체에서 미국에 북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쏘아달라고 설득하는 옵션과, 재래식 무기나마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 어디서든 은밀하게 대량보복공격을 할 수 있는 옵션 중 어느 쪽이 우리 안보에 더 이득일까?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미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 전수를 약속한 바 있다. 한·미 동맹이 그렇게 혈맹이라면 우리도 그 정도는 얻어낼 자격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왜 이런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대통령실 도청 문제로 백악관이 우리에게 빚지고 있는 상황 아닌가?

현실적으로 나는 핵추진잠수함을 덜 나쁜 핵의 또 다른 사례로 꼽고 싶다. 우리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필요악으로서 말이다. 중국이나 일본까지 염두에 두면 더욱 그렇다. 일상의 전기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도 얻을 수 있지만 잠수함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핵추진잠수함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 생명을 지킬 핵심적인 비대칭 전략무기이다.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미국에서 오는 7월21일, 한국에서 8월에 개봉한다. 요즘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일이 많은데 <오펜하이머>는 한국에서 너무 늦게 공개되는 게 아니냐는 불평도 있었다. 그러나 8월 개봉 날짜를 확인한 사람들은 이내 불만을 접고 수긍했다고 한다. 개봉일이 8월15일이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의 애국심이 정치인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