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혁당 재건위’ 연루 고 박기래씨, 사형 선고 49년 만에 ‘무죄’ 확정

김희진 기자 2023. 5. 1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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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검찰 상고 기각
17년간 억울한 ‘옥살이’
만세 외친 유족 “한 풀어”
박정희 정권 당시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17년간 옥살이를 한 고 박기래씨의 아내 서순자씨(왼쪽에서 두번째)와 장남 박창선씨(세번째)가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 정권 때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17년간 옥살이를 한 고 박기래씨가 재심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지 49년 만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8일 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씨는 1974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군기누설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17년간 복역했다. 1991년 가석방으로 출소해 통일운동을 하다 2012년 숨졌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남민전 사건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공안 사건으로 꼽힌다.

박씨 유족은 2018년 12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민간인을 수사할 권한이 없는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수사관이 박씨를 영장 없이 체포·감금하고 폭행 등 가혹행위를 해 허위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은 이를 받아들여 2020년 5월 재심을 결정했다.

검찰은 재심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당시 박씨의 법정 증언에 압박이 없었고, 변호인 조력을 받아 진술한 자백인 만큼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예정됐던 선고가 네 차례 연기되면서 재심이 시작된 후에도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원심 재판부는 그러나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영장 없이 보안사로 연행돼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불법 체포·구금된 상태로 수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되고,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보안사가 작성한 박씨 피의자 조서와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어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로 임의성이 없는 자백을 하고 이후에도 그런 심리 상태가 계속돼 동일한 자백을 했다면 법정 진술도 임의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법정 진술 당시 변호인 조력을 받았더라도 박씨의 심리적 압박 상태가 해소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이다. 재판부는 “재심 사건 진행이 늦어진 데 대해 법원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이날 “원심 판단에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박씨 유족들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선고돼 돌아가신 분의 한을 풀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만세를 외쳤다. 장남 박창선씨는 “검찰은 반성은커녕 17년 옥고를 치르고 고문을 당한 분에게 재심에서 다시 무기징역을 구형했는데 너무나 이례적이고 부적절하다”며 “저희가 (통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해) 첫 재심 사건으로 무죄를 확정받았는데 다른 피해자들도 많다. 그분들도 재심을 청구해 한을 풀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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