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의 버거운 인생레이스, 그래도 달린다… 트랙 위 꿈 향해

엄형준 2023. 5. 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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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개봉 영화 ‘스프린터’
단거리 국대 도전하는 3명의 선수
팀워크 통한 성장 드라마와 달리
꿈 포기 못하는 각자의 사연 그려
스포츠 영화 붐 속 ‘참신한 시선’

“육상해서 뭐하냐. 울면서 끝난다니까. 결국 정규직 하려고 이러고 있잖아.”

고교 육상부 코치인 지완(전신환 분)이 제자인 준서(임지호 분)에게 농담처럼 말한다.

한때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였지만 지금은 정규직 교사가 되는 게 목표인 계약직 코치인 지완에게 육상이란 이미 현실과는 멀어진 꿈이다. 주위의 반응도 비슷하다. 교감은 지완에게 육상부가 존속하면 정규직 교사가 될 수 없다며, 준서가 육상을 계속하는 게 좋은 일인지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스프린터’는 육상 선수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평범한 우리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올해는 유독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눈에 많이 띈다. 농구를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시작 휘슬을 울린 뒤, 권투를 소재로 한 ‘카운트’가 라운드를 이어갔다. 이어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딴 나이키 운동화인 에어 조던의 탄생 비화를 그린 ‘에어’와 농구 꼴찌팀의 승리 신화를 그린 ‘리바운드’가 패스를 받은 후, 노숙인 축구팀의 이야기인 ‘드림’으로까지 연결됐다.
모두 스포츠를 소재로 했지만 영화마다 색깔이 있고, 특히 스프린터는 전작들과 많이 다르다.
구기 종목을 다룬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이 ‘리바운드’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드림’은 팀워크를 통한 승리의 통쾌함과 역경 극복의 과정을 그린다. 홀로 링에서 싸워야 하는 권투선수의 얘기를 다룬 ‘카운트’도 복싱부의 화합과 단결을 중요한 코드로 넣었고, 경기와는 상관없는 비즈니스맨들의 얘기를 그린 ‘에어’ 역시 그렇다. 이들 영화 중 리바운드나 드림, 카운트는 눈물과 웃음을 적절히 버무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전개를 보인다. 리바운드는 그러면서도 현실 고증에, 드림은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를 연출하는 데 힘을 줬다. 슬램덩크는 송태섭이라는 인물의 성장이 메인 테마고, 에어는 조던의 경기장 밖 신화다.
스프린터도 일부 팀워크가 있긴 하다. 지완은 준서의 조력자고, 육상부 친구들은 준서를 격려한다. 나 홀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는 30대의 현수(박성일 분)를 아내 지현(공민정 분)은 돕고 격려한다. 가장 빠른 단거리 선수로 국가대표가 유력한 정호(송덕호 분)와 그의 실업팀 코치인 형욱(최준혁 분) 역시 공조관계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순탄하지만은 않다. 육상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단거리 선수로 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는 지완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제자의 꿈을 도울 것인지, 정규직 교사 자리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한때 육상 유망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랐던 스프린터였던 현수는 꿈을 놓지 못하고 도전을 이어가고, 지현은 그런 그를 돕지만 이미 꿈의 유효기간이 끝났음을 알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호는 국가대표 자리를 따내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코치인 형욱은 잘못을 알면서도 결국 그와 공생관계가 된다.

전작들이 모두 팀의 승리를 위한 과정을 그렸던 것과 달리 스프린터는 각 선수가 서로를 이겨야 하는 경쟁 관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주인공이 이겨야 끝이 나는 그런 결말을 향해 가진 않는다.

모든 선수가 결승점의 테이프를 끊기 위해 뛰어도 우리의 삶처럼 모두가 1등이 될 순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리바운드가 꼴찌의 우승, 드림이 국제 대회의 값진 한 골을 통해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스프린터는 이기는 것 자체보다도 그 과정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우리를 격려한다.

육상 경기의 우승은 단 한 명뿐이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꼴찌 성적표를 받는다. 먼발치서 경기를 바라보는 관중들은 우승자에게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면 그뿐이지만,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모든 선수에겐 저마다의 깊은 사연이 있다.

영화 속에서 나쁜 선택을 한 정호를 연기한 배우 송덕호가 1심 재판에서 병역비리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현실처럼, 우리 삶에서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를 숨기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준서처럼 벅차오르는 열정을 믿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누군가는 현수처럼 꿈을 향해 외로운 뜀박질을 계속하고 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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