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앞둔 서미화 비상임 인권위원 “문체부의 풍자만화 경고에도, 노동자 분신에도 침묵…인권위, 거꾸로 가고 있다”

윤기은 기자 2023. 5. 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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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 11명 중 7명이 법조 출신…자질·다양성 확보 절실”
현 정부 들어 역행 뚜렷…의견 다르다고 협박성 발언도
현장 아는 이 턱없이 부족…전문가 들어오는 구조 필요
인권감수성·인권가치 관점서 자격 있는지 필터링해야

“꾸준히 발전하고 성장하는 게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따라, 정당 추천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거꾸로 가는 듯한 현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직 퇴임을 앞둔 서미화 인권위원은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시원하기도 하지만 이런 시점에서 임기를 마감하게 된 우려심과 걱정이 앞서 마음이 무겁다”고도 했다.

서 위원은 정권이 바뀌고 인권위원 4명이 교체된 지난 1년간 인권위가 역행했다고 평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윤석열 대통령 풍자만화 ‘윤석열차’를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경고한 것에 대한 진정을 각하하고,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 관련 제도 개선 권고 건을 상임위에서 부결시킨 것을 예로 들었다.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분신 사건과 정부의 ‘건폭몰이’에 대한 인권위 입장표명이 보름 넘도록 나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인권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4명과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된다. 인권위원들의 결정은 한국 사회 인권 의제의 방향을 가리키는 ‘풍향계’ 역할을 한다. 몇몇 기관은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정책과 제도를 바꾸기도 한다.

서 위원은 최초의 시각장애인 인권위원이다. 대통령 지명으로 2020년 5월1일부터 비상임위원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 4월30일부로 임기를 마쳤다.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이날까지도 인권위원 업무를 보고 있다.

- 3년 넘게 인권위원으로 활동한 소회를 밝혀달라.

“시각장애인이라 읽어주는 문서 내용을 들으면서 확인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 정부가 바뀌고 작년 말부터 인권위 진정 사건 결정이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르게 갔다. 꾸준히 성장하는 게 아니라 다시 거꾸로 가는 듯한 현실을 느끼고 있다. 시원하기도 하지만 이런 시점에서 임기를 마감하게 돼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

- 인권위가 역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화물차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법률 개정안 건이 상임위원회에서 (찬반) 2 대 2로 팽팽하게 (맞서다) 결정이 안 된 게 있었다. 중차대한 내용인데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하지 않았나. (제5차 전원위에서 해당 안건을 다시 상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 비상임위원은 (의견이 다른 인권위원으로부터) 모욕적인 말도 들었다.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느니, 이게 전원위에서 채택될 경우 인권위에 회오리가 몰아치고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더라.”

- ‘허위 공문서다’라는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나.

“(뜻이 맞는) 비상임위원들이 화물차 업무개시명령 부분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는 안이 담긴 서류를 다 만들었다. 이를 전원위에 상정해주십사 안건으로 제출했더니, 그게 허위 문서라고 말하더라.”

- 인권위가 역행하고 있다는 다른 예가 있나.

“4월4일자로 e메일 받은 게 있는데, 인권위 공무원노조에서 인권위원 전원에게 보내는 거였다. 읽어보니 조사관 비하, 무시 등을 회의에서 자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의록은 후대가 두고두고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인권의 역사인데, 앞으로 나아갈 인권 역사에 오물 남기지 말라는 내용을 보고 충격받았다. ‘누군가 조사관에 대한 괴롭힘 행위를 한 것 아닌가’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으로, 참담했다. 그 편지를 봤는데 저도 부끄럽고 죄송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 건설노동자 분신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표명이 없었다.

“빠르게 입장을 밝히고 성명을 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평가받는 사안이다. 진정인은 인권위를 최후 보루로 생각한다. 벼랑 끝에 서 있는 피해자들이 느끼는 인권위의 현주소가 어떤지 묻고 싶다.”

- 문체부가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 그림을 전시한 기관에 경고를 내린 것을 두고도 전원위에서 안건을 각하하되 ‘의견표명’ 정도로 결정을 내렸다.

서미화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이 지난해 8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서미화 위원 제공

“국가기관이 이런 보도자료를 냄으로써 ‘더 이상 (비슷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을까’란 우려가 생긴다. 그리고 수상자가 미성년자다. 국제권리, 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 이익을 최상으로 인정하라’고 한 거에 대한 위반이다. 문체부 보도자료가 나가면서 이 학생에 대한 엄청난 비하, 욕설, 전화폭탄도 이뤄졌다. 그 원인 제공을 국가가 한 것이다.”

서 위원은 인권위원 11명 중 7명이 법조인 출신이고, 현장 인권활동가는 3명뿐인 것을 지적하며 인권위 구성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권운동 현장에서 일해온 사람들의 경험과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 인권위원 구성은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나.

“11명이 있는데 4명은 대통령, 3명은 대법원장, 4명은 정당 지명이다. 그렇다보니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면 대통령 성향이나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 윤석열 정부를 1년 겪었는데 인권 관점이나 가치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상임위원이라면 인권감수성, 인권가치 관점에서 자격이나 전문성이 있는지 필터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권침해, 차별을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서 본인이 인권침해 발언을 서슴지 않는데, 이건 상당한 위기다.”

- 다양성이 왜 중요한가.

“인권은 현장성을 중시해야 된다고 본다. 시야 장애인의 공무원 필기시험 응시 시간을 늘리도록 권고하는 안건에서는 내 경험을 예시로 들었고,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장애, 이주노동자, 여성·아동 등 다양한 문제가 상정된다. 당연히 결정 인용을 해야 하는데 설명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이 분야에 현장 활동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고, 그런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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