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 "김우빈='비인간적'으로 친절…20대 때 싫었던 현장, 이젠 기다려져"('택배기사')[TEN인터뷰]
조의석 감독과 21년 만에 새 작품 "첫 촬영 앞두고 묘해"
"안 해봤던 연기 하며 이제서야 재미 느껴"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처음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라 긴장하기도 했고 요즘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사랑 받고 있어서 부담감도 있었는데 순위권에 들었다고 해서 다행스러워요. 새롭고 세계관이 재밌다는 분도 계시고 원작을 본 분들은 아쉽다고도 하시고 여러 반응이 있는데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TV 드라마로 방영되고 시청률에 일희일비했는데, 요즘엔 넷플릭스 같은 OTT는 시청 시간이 지표가 된다고도 하고 신기하고 그래요. 하하."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가 공개 첫 주 글로벌 TOP 10 비영어 TV 부문 1위(5월 8일~14일)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배우 송승헌은 기뻐했다. '택배기사'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 전설의 택배기사 5-8(김우빈 분)과 난민 사월(강유석 분)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야기. 송승헌은 사막화된 세계에서 지금의 질서를 세운 천명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들끓는 야욕을 가진 천명그룹 대표 류석 역을 맡았다. 송승헌은 "조의석 감독에게 이런 원작이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3년 전이었던 것 같다. 지구 종말 이후의 세계관에 대해 들었을 때 신선했다. SF나 디스토피아물을 해본 적 없기도 해서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송승헌이 이번 작품에 합류한 이유 중 하나는 조의석 감독과 인연이다. 송승헌은 2002년 개봉작 '일단 뛰어'로 조의석 감독과 작업했다. 그는 "조의석 감독과는 감독과 배우이기 전에 오래된 친구다. 어떤 작품, 어떤 역할이든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며 이번 작품을 출연 이유를 밝혔다. 또한 "다음 작품을 빨리 하자고 했는데 안 믿길 만큼 시간이 빨리 갔더라. 지난주 10일에 제작발표회를 했는데 '일단 뛰어' 개봉일이 2002년 5월 10일이더라"면서 감회를 느꼈다. 그러면서 "소재도 흥미로웠지만 믿는 친구와 오랜만에 같이 하는 작품이자 예전보다 성숙해진 배우와 감독으로서 다시 만나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촬영 내내 좋았다. 첫 촬영을 앞두고는 묘했다. 자주 보는 친구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고 말했다.
극 중 류석은 대규모 인원의 난민을 동원하는 A구역 공사를 담당하며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를 위해 하루라도 빠른 완공을 명령한다. 그는 난민을 거주 구역에 이주시키는 것에 반대하며 난민을 무차별 학살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앓는 불치병의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다 생체 실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송승헌은 "류석은 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존재감은 또 드러내야 하는 인물이다. 감독님과 그런 점을 두고 많이 상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류석이 빌런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나름대로 그의 시각에서 그가 하는 행동은 이유가 있다. 자원은 한정돼 있고 산소 생성량도 정해져있다. 희생을 강요하는 선택이 올바르진 않지만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 전에서 류석이 외롭고 안쓰러워보이기도 했다.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면을 다 표현하고 싶었지만 작품의 시간 같은 게 제한돼 있기 때문에 다 넣을 순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과거 로맨스물에서 '잘생긴 남주의 정석'을 보여줬던 송승헌은 이번 작품을 비롯해 최근 드라마 '보이스4', '플레이어' 같은 장르물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그는 "일단 재밌다. 안 했던 걸 해보게 됐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연기하면서 송승헌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생겼을 거 아닌가. 이제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시도를 하고 싶다. 그런 연기를 할 때 재밌기도 하다. 보는 분들이 '송승헌이 아니네?'라는 생각을 하는 시도를 앞으로도 하고 싶고 그런 데서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20~30대 때는 현장 가는 게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현장 가는 게 재밌고 기다려진다. 그런 시도를 마음껏 해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악역 연기에 대해서는 "예전에는 악역을 하면 길 가는데 사람들이 돌 던지기도 한다고 선배들이 농담처럼 말했다. 요즘에는 빌런이 됐다고 시청자들이 욕하고 그러진 않는다. 시대가 변했다. 안 해봤던 캐릭터들을 많이 시도해보고 싶다"며 "사람들이 못 보던 모습,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이라고 해줄 때 좋았다. '어울리네?'라고 해주실 때 뿌듯하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송승헌은 이번 작품에서 함께 연기한 김우빈에 대해 칭찬을 아기지 않았다. 송승헌은 "우빈이는 조의석 감독과 영화 '마스터'를 같이 했지 않나. 조의석 감독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우빈이가 너무 괜찮은 친구라고 하더라. 누군가에게 좋은 이야기 듣는 게 쉽진 않다. 욕 안 들으면 다행인데, 우빈이는 싫다는 사람이 없더라. '그래? 너무 인간미 없는 거 아니야?' 그랬다"며 웃었다. 이어 "선배들한테 잘하고 주변 사람들 챙기고 어른스럽더라. 나는 저 나이대 저러지 못했는데 싶었다. 저도 배운 게 많다"며 "우빈이가 인간적이지 않을 정도로 친절해서 '사기치려고 하나' 그랬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가식이 아니다. 인성이 바르고 괜찮은 친구구나 싶었다. 한동안 아파서 고생했는데 다행히 잘 회복했다. 병원에서 위험하다고 할 때도 있었다며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하더라. 너무 괜찮은 친구"라고 극찬했다.
1995년 데뷔해 활동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 송승헌. TV에서 OTT로 확장되는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느꼈을 송승헌이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 때 당시 주요 매체가 4개였다. 그 4개만 막으면 스캔들이 안 났다"며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어 "이제는 비밀이 없는 세상이 됐다. 1분이면 전 세계가 다 아는 세상이다"고 말했다.
그 사이 드라마 제작 현장에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고 스태프, 배우들의 처우도 개선됐다. 송승헌은 "요즘은 현장 가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스태프들이 며칠 밤을 새는데도 그게 한국 드라마의 힘이라며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했다. 월요일 저녁 방송인데 아침까지 촬영했다. 대사하면서 존 적도 있다. '감독님이 왜 컷을 안 하지?' 하면서 돌아보면 감독님이 졸고 계실 때도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정해진 시간까지 촬영하고 끝낸다. 예전에는 모두 몸이 망가지면서도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많이 개선됐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해가는 콘텐츠 제작 환경 속에서 송승헌은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그는 "20~30대 때는 그저 배우가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하다가 연기를 하게 됐고 운 좋게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막 재밌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연기가 즐겁지 않고 억지로 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점점 나이 먹고 안 하던 걸 해보니 뒤느게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런 감정을 20대 때 느꼈으면 더 좋은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은 현장 가는 게 재밌다. 예전에 선배들이 나이 먹어야 안다, 철들어야 안다 그랬던 게 이런 건가 싶다"며 웃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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