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설노동자 분신 악마화한 조선일보야말로 ‘언폭’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17일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A씨가 고 양회동씨의 극단적 선택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과 현장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조선일보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중요한 사실을 감추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사건을 호도하고 진실을 왜곡했다. “노조 탄압 중단하라”며 분신한 양씨에겐 중대한 2차 가해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기사는 사건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자료에 기반하고 있다. CCTV는 특정 공간만 비출 뿐 소리도 담기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맥락과 실체 파악에 한계가 있다. 최대한 많은 목격자와 관계자들을 만나 이중삼중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현장에 가장 근접해 있던 YTN 기자들이나 경찰 말도 듣지 않고, ‘익명의 목격자’ B씨 발언에 전적으로 의존해 작성됐다. B씨가 이번 사건과 어떤 관계인지도 밝히지 않았고, 내용도 “불이 붙자마자 봤는데, 곁에 있던 사람(A씨)이 떨어져서 멀리 갔다가 조금 뒤부터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가 전부다. ‘멀리 갔다가’ ‘조금 뒤부터’ ‘갑자기’ 같은 표현은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강릉경찰서 관계자는 A씨의 자살 방조 정황을 부인했고, YTN 기자들도 ‘현장 노조 간부(A씨)가 양씨의 분신을 말렸다’는 취지로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B씨 발언에 대한 검증도 없이 기사 부제를 “자리 뜬 뒤 돌아와 갑자기 오열”이라고 표현했다. A씨를 동료의 극단적 선택을 방조한 뒤 뒤늦게 슬퍼한 사람으로 몰아간 것이다.
조선일보는 CCTV 화면을 ‘독자’가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설노조는 당시 현장 확인 결과 CCTV는 춘천지검 강릉지청 종합민원실 건물에 장착돼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검찰로부터 자료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조선일보가 취재원을 감추고 일반 독자로부터 제보받은 것처럼 포장했다면 이는 언론윤리 위반이다.
조선일보 보도 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청년단체는 A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노조에 특단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1991년 5월 언론과 보수 논객, 검찰이 합작해 벌인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과 판박이다. 2015년 대법원 재심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은 강기훈씨는 1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살인보다 더한 낙인”이라며 조선일보는 30년 전에도 나한테 이미 죄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다. 언론이 명확한 근거 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인권을 짓밟으면 그것은 시쳇말로 ‘언폭’이다. 조선일보는 기사 보도 경위를 밝히고 A씨와 건설노조에 사과해야 한다. 강릉지청은 유족 동의도 받지 않은 자료가 조선일보에 넘어갔다면 관련자를 문책하고, ‘건폭몰이’에 혈안이 된 원 장관과 윤 청장은 경거망동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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