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죽으면 어떡해" "하면 하는 거지 XX"... 1년간 지속된 야구 명문고 '학폭'
가해자 한 명은 프로야구단 단장 아들
단장 "뒤늦게 알아, 결과 받아들일 것"
학교 대응 미흡, 피해부모 회유 정황도
“애미(엄마) 없는 개XX야!”
올해 4월 서울의 한 고교 야구부원 A(17)군은 선수단 버스 안에서 같은 2학년 동급생 B군으로부터 이런 폭언을 들었다. 어머니가 있는 A군은 당황해 “우리 엄마가 없다는 거냐”고 되물었고, B군은 “어, 안 계시잖아”라고 답했다. 그러더니 다시 “진짜 X신 장애인 같은 ○○” 등의 욕설이 이어졌다. 참다 못한 A군이 “어쩌라고”라며 되받아치자, B군은 “(야구) 접어. 왜 해? 접으라고, 꺼져”라면서 급기야 물병을 던졌다.
야구 명문 고교에서 또 ‘학교폭력’ 사건이 터졌다. 가해자는 3명. 이 중 B군은 현직 프로야구 단장의 아들이다. 해당 학교는 지난달 24일 학교폭력 접수 후 가ㆍ피해자 조사를 마쳤고, 사건을 조만간 서울시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할 예정이다.
녹음파일에 담긴 적나라한 '학폭'
18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1년간 지속됐다. 올 초 한 달간 동계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A군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에야 부모는 폭력 사실을 인지했다. A군은 지난달 11일부터 열흘 동안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피해 증거를 직접 수집했다. 본보가 입수한 녹음파일엔 언어ㆍ신체적 폭력 행태가 적나라하게 담겨 피해 학생이 느꼈을 두려움의 정도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4월 20일, 또 다른 가해자 C군은 식사 도중 A군의 출신을 문제 삼았다. ‘엘리트 선수’ 코스인 학교 야구부가 아닌 주니어(U-16) 야구단 출신인 점이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C군은 “유소년(주니어)은 군기가 안 잡혀 분위기가 편하겠다. 부럽다”고 비아냥댔고, A군은 “별로”라고 답했다. 그러자 C군은 “군기 있어? 근데 (넌) 왜 그 모양이냐? 초반에 X 멍청했잖아”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내가 너 갈굴 때마다 어때? 그만했으면 좋겠어?”라며 “그만하라면 그만할 것 같아? 미안, 밥 안 넘어가지”라고 놀렸다.
물리적 폭력 정황도 뚜렷했다. A군은 3월쯤 배팅 훈련을 하다 허리를 다쳐 한동안 재활치료를 받았는데, 4월 15일 세 번째 가해자 D군은 갑자기 그의 허리 부위를 때렸다. 깜짝 놀란 피해 학생은 “뭐하느냐”고 항의했고, D군은 “허리 때렸는데 왜?”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D군은 이전에도 화장실에서 마주친 A군을 폭행하거나 같은 학년인데도 존댓말을 쓸 것을 강요하며 “XX ○○끼야, ‘예, 알겠습니다’ 하라니까”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심지어 가해자들은 본인들의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4월 15일 C군은 1학년 후배에게 “형이 재밌는 거 보여줄까”라며 잠들어 있는 A군에게 쓰레기를 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A군이 잠에서 깨어나자 즐거워하는 음성이 들린다. 다른 학생이 “쟤(A군) 자살하면 어떡하려고?”라고 묻자 D군은 “하면 하는 거지, XX”라고 답했다.
학교 차원의 조사가 시작된 후 가해자들은 일부 학교폭력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D군이 보낸 사과문자엔 “같이 훈련하는 데 불편하면 서로에게 좋을 거 없잖아”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또 B군의 아버지는 사건 접수 2주 정도가 지나서야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구단이 그의 단장 취임을 공식 발표하기 엿새 전이었다. 그는 “이달 3일 처음 학폭을 전해 듣고 내용도 확인하기 전에 사과부터 한 것”이라며 “피해 학생과 부모,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조사 결과가 나오든 겸허히 수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교 측, 2주 지나서야 가·피해자 분리
가ㆍ피해자 분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훈련에 빠진 BㆍC군과 달리, D군은 이달 3일까지 피해자와 한 공간에서 운동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장이 학교폭력을 인지하면 피해 학생에게 즉각 분리의사를 묻고, 가해 학생과 최대 3일간 분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A군이 ‘분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해명했다. 야구부 감독도 “상세한 학교폭력 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상황에서 학교 지시 없이 분리할 권한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학생 부모는 “이런 규정이 있는지 학교 측이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황당해했다.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한 장학사는 “미성년자는 폭력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아 보호자에게도 의사를 묻는다”고 말했다. 실제 A군은 야구부에 피해를 줬다는 자책감과 주변 시선을 의식해 혼란스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이 피해자 부모에게 “평행선만 지속되면 사과의 마음이 원한과 증오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면서 회유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대로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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