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예림 “평생을 학폭 피해자로 살 수는 없어… 잘 버틴 자신을 기특하게 여겼으면” [밀착취재]

박유빈 2023. 5. 1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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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 방송에 출연해 학교폭력에 시달렸다고 고백하면서 '현실판 더 글로리'로 알려진 학폭 피해자 표예림(27)씨.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린 뒤 2차 가해에 지난달 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는 "저도 현재진행형이라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는 수준이지만 다른 학폭 피해자들도 학창시절을 잘 버틴 자신을 기특하게 여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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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더 글로리’ 표예림씨
“학창시절 얘기할 때 ‘평범했다’ 거짓말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자 죄책감 커져
가해자·피해자 분리 가장 필수적 조치
이들이 함께 있으면 바로잡기 불가능”

지난 3월 한 방송에 출연해 학교폭력에 시달렸다고 고백하면서 ‘현실판 더 글로리’로 알려진 학폭 피해자 표예림(27)씨.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모처에서 만난 그는 “의도와 달리 내 얘기에 아무 연관이 없는 제3자가 피해를 본다는 말을 듣고 피로가 누적됐다”며 “그때는 내가 죽으면 모든 일이 끝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응급실에서 눈을 떠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웃었다. 방송 출연 뒤 그는 모교의 실추된 이미지에 힘들어 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근무하는 업장까지 피해를 본다는 소식에 힘들어 했다. 표씨가 후원금을 노린다거나 그의 가족까지 욕하는 비방도 있었다.

17일 서울 서대문구 모처에서 만난 학교폭력 피해자 표예림씨(왼쪽). 남정탁 기자
그는 2015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학창시절 기억에서 회복하는 중이다.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린 뒤 2차 가해에 지난달 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는 “저도 현재진행형이라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는 수준이지만 다른 학폭 피해자들도 학창시절을 잘 버틴 자신을 기특하게 여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역시 표씨에게는 ‘살아남은 시간’이다. 많은 피해자처럼 표씨도 한때는 자신이 학폭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에게 학폭 피해 경험을 마주하기 위해 선행돼야 했던 작업은 10대와 20대의 나를 분리하는 일이었다.

표씨는 “스무 살 이후 학창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평범하게 보냈다’는 말로 꾸며냈다”며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을수록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고 이런 행위를 한다는 죄책감이 커졌다”고 돌아봤다. 이어 “수개월간 한숨도 못 잘 만큼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해진 때에야 병원 치료를 받고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최근 표씨를 가장 아프게 하는 말 중 하나는 “피해자 같지 않다”는 말이다. 표씨는 “학폭을 당할 때의 나는 피해자가 맞지만 모든 면에서 피해자는 아니고 평생을 피해자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학폭 피해자라면서 대인관계 어려움이나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호소하는 분의 연락을 받는다”며 “학폭 기억에 멈춘 시간을 흐르게 만들려면 피해자 또한 자신이 가둔 ‘피해자 프레임’을 벗어나 부끄러운 과거가 아닌 잘 견뎠고 위로받아야 할 과거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조언했다.

누군가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며 학폭 이유를 피해자에게 찾기도 한다. 표씨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피해자”라며 “‘그러나 애초에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어 대답할 수 없고 이 질문을 물어야 할 대상은 가해자”라고 꼬집었다. 그는 “학폭을 애들 사이 장난으로 보는 태도 역시 가해자 중심주의”라며 “모든 피해 사실은 피해자에게 그 강도를 물어야 맞지, 가해자에게 물어서는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끊이지 않는 학폭 문제에 대처할 때 최우선이자 필수적인 조치는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라고 그는 강조했다. 표씨는 “이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학폭을 바로잡기는 불가능”이라며 “내 피해 사실을 알리려 진술서를 쓴 동창들조차 졸업해 떨어진 상황이 아니었으면 써줬을까, 현재 학폭을 묵인하는 학생들은 자신으로 괴롭힘 대상이 바뀔 수 있는데 어떻게 용기를 낼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마땅히 아이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진짜 어른’이 절실했다던 표씨는 여전히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의 관심이 학폭을 줄이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에 비해 지방은 상대적으로 학폭 관련 문제의식 수준도 낮다“며 “여전히 사건이 발생하면 학폭위원회를 열고 제대로 대처하기보다 빨리 덮고 묵인하려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폭 피해자 사연을 듣고) 지방 학교에 제도적 점검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느 지역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학생이 누리는 권리가 다른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표씨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럴수록 국회 청원이 통과될 확률이 높다고 믿는다. 표씨는 지난달 7일 ‘12년간 당한 학교폭력에 관한 청원’이라며 학폭 처벌 공소시효를 폐지해 달라는 요지의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올려 법제사법위원회가 청원을 심사 중이다. 그는 SNS에 홍보영상을 올려 국민청원에 적극적인 참여도 촉구하고 있다. 표씨는 “미성년자일 때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쉽다“며 “공소시효를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더라도 성인이 된 시점부터 공소시효를 측정하기만 해도 피해를 본 아이가 향후 법적 책임을 물을 시간을 더 벌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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