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복귀작 출판사 ‘답정너’ 설문조사 “한번 죄인이면 영원한 죄인이냐”

이혜진 기자 2023. 5. 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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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가 지난해 12월 펴낸 ‘무의 노래’(왼쪽)와 ‘고은과의 대화’(오른쪽). /실천문학사

성추행 논란으로 집필 활동을 중단한 고은 시인의 신작을 출판했다가 비판에 직면했던 출판사가 ‘출판의 자유를 억압당한 원인을 분석하겠다’며 설문조사에 나섰다.

실천문학사는 지난 4일부터 19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출판의 자유 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이라는 제목의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설문조사 안내문에서 “개인이나 출판사나 표현의 자유 권리를 누리는 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지극히 당연한 기본권리”라며 “그런데 이런 당연한 기본권리가 범죄시되고 억압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서 본사는 순수시집의 판매를 중단하고 있으며, 문예지도 잠정 휴간 상태”라고 했다.

출판사 측은 올가을 이 문제에 대해 심포지엄을 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며, 이 심포지엄의 기초 자료로 사용하고자 설문조사를 실시한다고 소개했다. 설문은 나이와 성별, 직업 등을 묻는 문항을 제외하면 총 11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실천문학사 온라인 설문조사 문항. /설문조사 페이지 캡처

응답자에 대한 정보를 묻는 1~4번 문항 직후 5번 문항에서 뜬금없이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 복역하고 나왔는데 다시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건 범죄냐 정의냐’고 물어보더니, 6번 문항에서는 ‘그 농부를 도와준 정미소를 압박하는 것이 범죄냐 정의냐’를 묻는다. 고은 시인과 출판사를 각각 농부와 정미소에 빗댄 것으로 보인다.

7번째 문항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다. ‘평생 시만 쓰던 시인이 추문에 휩싸여 5년간 자택 감금당하듯 살았고 모든 명예를 잃은 상태에서 다시 시를 쓰고 시집을 내겠다면 평생 못쓰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즉 한 번 죄인이면 이전의 생활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설문조사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고은 시인과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서술과 판단이 드러난 부분이다. 이어 ‘추문에 휩싸인 시인이 쓴 시를 출간한 출판사를 압박하는 것은 월권인가’라고도 물었다.

이어 다음 문항에서는 추문을 일으켰지만 계속 평론집을 발표한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레느의 사례를 언급하는가 하면, 지록위마(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서 남을 속이려는 짓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를 언급한 문항도 있었다.

실천문학사 온라인 설문조사 문항. /설문조사 페이지 캡처

12번 문항에서는 ‘본사는 국민의 기본권인 출판의 자유를 억압 강제(허가, 검열)하거나 지지 동조하는 여론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하며 ‘이런 폭력행위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냐’고 묻고, 그 이유로 정치적 이유, 상업적 이유, 부화뇌동, 무지, 내로남불,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식이라는 선택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후진국민성’을 언급한 문항도 있었는데, ‘징벌의 법칙에 따라 지은 죄에 대해서는 그것에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그 이상의 이중처벌이나 기본권 등을 박탈하는 불법적인 행위는 후진국민성의 발현이다’라는 문장에 찬반을 표시하도록 했다.

출판사 측은 설문 끝에 “여론의 찬반과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서 그 어떤 범죄와도 상관없이 대한민국 헌법 21조가 부여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는 것이며 그것을 억압하는 것이 범죄인데, 그것이 통용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며 “10명 전부가 사슴을 말이라고 주장해도 일시적으로만 말일뿐이듯, 어느 누가 훼손한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민주사회의 기본권리임은 변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고은 시인은 지난 2018년 최영미 시인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자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10억 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가 확정됐다. 실천문학사는 지난 1월 고은 시집의 신작을 출간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공급을 중단했다. 당시 윤한룡 출판사 대표는 “이번 사태로 심려를 끼친 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시집 공급을 중단하고 계간지 ‘실천문학’도 2023년 봄호까지 발간한 뒤 휴간하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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