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칼럼] ‘노동자 유언’ 50년 역사와 그 너머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아….”
5월1일 ‘노동절’, 노동자가 하루 쉬며 1830년대 이후 200년간 이어져온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권 확대 역사를 기억하는 날. 그런데 이날 양회동(50)씨가 분신, 이튿날 운명했다. 그는 건설노조 강원지부 활동가로, 책임감이 강했다. 현장 소장도 “의견은 다를지언정 악감정은 없었고, 양씨는 회사와 노조 간 다리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대통령과 검찰이 “건폭”(건설현장 폭력), “공갈” 딱지를 붙이니, 하늘 끝까지 억울했다. 차라리 ‘나 하나 죽어’ 동료들 누명을 벗기려 했을까.
노동자가 자결로 자본과 권력에 저항한 역사는 길다. 50여년 전 1970년 11월 서울 청계천 봉제공장 재단사 전태일(당시 22)은 근로기준법이 짓밟힌 현실에 분신 항거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가 유언이다. 당시 노동법은 한자투성이라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하나”가 소원이었다. 차비를 아껴 여동생 같은 시다(보조원)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사람, 그런 그가 동료들과 만든 게 ‘바보회’였다. 그러나 스스로 ‘바보’임을 안 순간, 그들은 바보를 넘어섰다. 근로기준법을 하나씩 공부했고, 깨칠수록 세상의 부조리에 경악했다. 그의 분신은 자본과 권력에의 항거였지만, 동시에 바보같이 일만 하는 무지렁이들을 깨우는 죽비였다.
그 뒤 우리는 숱한 전태일을 거듭 본다. 1971년 5월 한영섬유 노조원 김진수(22)는 사쪽 폭력에 산화했고, 1976~78년 동일방직 여성들은 똥물 세례도 감수하며 ‘사람’임을 외쳤다. 1979년 김경숙(21)은 와이에이치(YH)무역의 노조 파괴에 저항하다 투신했다. 5·18 광주항쟁 직후 노동자 김종태(22)는 노동자와 광주시민은 같은 운명이라며 이대 앞에서 “노동3권 보장” “유신잔당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고 외친 뒤 분신했다. 1986년 3월엔 기계공 박영진(26)이 분신 항거했다. 그 일기장엔 “모두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인격 대우를 받는 세상, 그런 세상은 노동자 스스로 깨어나 함께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했다.
1991년 12월 신발공장 미싱공 권미경(22)은 ‘30분 일 더 하기’를 강요하던 회사와 어용노조, 구사대에 저항하며 3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그 팔뚝에 쓴 유서는 “나를 그대들 가슴속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으리. (…) 내 이름은 공순이 아닌 미경이”라 했다. 1995년 5월 현대차 양봉수(28) 노조원은 라인 속도 증가에 반대하다 부당해고된 뒤 분신 저항했다. 그 직후 대우조선 박삼훈(40)도 사쪽의 신경영 전략, 동료 간 경쟁과 감시, 집회 억압에 항거, 분신했다. 유서엔 “가진 자만 판치는 세상,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했다. 1996년 1월엔 간호노동자 김시자(35)가 분신했는데, “(민주노조 압살) 선례를 남기면 안 되기에” 사쪽의 부당징계와 어용노조에 항거했다. 1999년 10월 씨티은행 명동지점장 안재원(35)도 “은행만을 위해 일한 결과, 너무 많은 걸 잃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바보 같은 아빠의 삶을 살지 마라”며 한강에 투신했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 10월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2004년 12월 한진중 비정규직 김춘봉도 사쪽에 항거, 자결했다. 2009년 8월 쌍용차 대량해고 투쟁 때는 ‘선풍기 소리가 경찰 헬기처럼 들리던’ 한 노동자가 “형사를 믿은 내가 바보였다. 살려준다는 말에, 복직시켜준다는 말에, 가정을 살릴 생각에, 내가 동료를 팔아먹은 죽일 놈”이라 양심 고백 뒤 자결을 꾀한 적도 있다.
2012년 한진중 최강서 노조원은 사쪽의 158억원 손배소에 항거, 자결했다. 2015년 5월 포스코 사내하청 이지테크 노조원 양우권은 해고자 복직 및 정규직 전환 문제로 힘든 투쟁 중 끝내 절망했다. 유서엔 “똘똘 뭉쳐 끝까지 싸워 정규직화 소송, 해고자 문제 꼭 승리하시라. 멀리 하늘에서 연대하겠다” 했다. 그리고 최근 건설노동자 양회동이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윤○○의 검찰독재 정치,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달라” 했다.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 활동하는 건 노동·생활조건 향상을 위해서다. 우선은 무한 자본증식을 꾀하는 회사, 노동법을 무시하는 경영에 분노한다. 사쪽에 빌붙어 떡고물을 탐하는 어용노조나 구사대도 밉다. 자본의 친구인 국가(입법, 사법, 행정)도 낯설다.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리영희 선생은 “언론과 지식인은 반공 이외의 가치나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나서서 자기조직화를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악법과 부당해고, 산재와 손배소, 차별과 편견 등에 ‘목숨’ 걸고 싸운다.
1970년 전태일에서 2023년 양회동까지 유서는 한결같다.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자!’ 이 소박한 희망을 외면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계속 믿고 따라야 하나? 얼마나 죽어야 세상이 바뀔까? 물론, 노동자들은 당장 살길이 막막하니 ‘어쩔 수 없이’ 매일 출근한다. 그나마 ‘살아서’ 퇴근하면 다행! 살아서 출근, 살아서 퇴근하는 것으로 족한 게 자본주의 삶인가? 좀 더 욕심부려, ‘남부럽지 않게’ 잘살면 성공일까? 그러나 50년 이상 쌓인 노동자 유서들은, 그 글귀들 훨씬 ‘너머’를 통찰하고 실천하기를 요청한다. 여기에 인생을 걸자!
6세기 베네딕도 수도원의 기본 철학 “기도하고 일하라”는 결코 ‘노동의 신성함’을 찬미한 게 아니다. 이는 오히려 영과 육, 지와 행, 주와 객의 일체화를 지향한다. 이 ‘일체주의’ 정신에 따르면 우리는 더 이상 자본·권력 패러다임의 포로일 순 없다. 왜냐면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생명(노동, 자연)을 제물 삼기 때문! 여기서 나는 베네딕도 철학을 살짝 틀어, “일하고 기도하라” “읽고 연대하라”를 새긴다. 마음도 가난했던 권정생 선생은 <빌뱅이 언덕>에서 “좀 더 사람다워지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고 “대통령 되기 전에 먼저 사람다워져라” 했다. 독서도 성찰도 않는 대통령에게 기댈 게 없는 것처럼, 민초들 역시 마찬가지다. 짧은 인생살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집합적 성찰과 연대 없이 참‘자유’는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대학생 친구’보다 공부하는 ‘바보회’가 필요하다. 우리 가슴속 열사들의 눈물에 응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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