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키울 각오 단단히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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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한달 정도 지났을까.
반려견이 1천만마리가 넘는 나라 독일에서 개를 키우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신 "개집 밖에서 충분한 야외운동"을 품종·나이·건강상태에 맞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반려견을 2m 이하 짧은 줄로 묶거나, 어두운 공간에서 장기간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학대당한 동물을 소유자한테서 격리하는 기간을 기존 3일에서 5일로 늘리는 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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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특파원 칼럼] 노지원 | 베를린 특파원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한달 정도 지났을까. 세면대가 고장 나 집주인에게 급히 연락했다. “미안한데 오늘 오후엔 바빠. 개 산책을 시켜야 하거든. 내일 아침에 들를 수 있어. 오케이?” 집주인 아저씨는 내가 세 들어 사는 집 바로 앞 건물에 산다. 오가며 자주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반려견을 산책시키러 나가거나, 마치고 들어오는 중이다.
베를린의 크고 작은 공원은 물론 거리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걷거나 뛰는 이들을 숱하게 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입구에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대형견이 한두마리씩 꼭 있다. 지하철·트램 등 대중교통에서도 베를린 개들은 바닥에 앉거나 엎드린 채 편안한 모습이다.(티켓 한장당 한마리까지 무료다.) 닥스훈트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독일에서는 다섯가구 중 한가구(19%)가 개를 키운다.
독일인 친구 힐트만은 “동료가 회사에 반려견 파니를 자주 데려온다”고 했다. 어린 강아지를 온종일 집에 혼자 두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다. 그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파니 산책을 시켜준다. 개가 보이지 않는 날엔 다들 안부를 궁금해한다”고 했다. 독일 생활정보를 공유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누군가 ‘개를 키우고 싶다’는 글을 올리자 “재택근무를 하거나 직장에 데리고 갈 형편이 안 된다면 혼자서 개 키우기를 추천하지 않는다”, “개를 혼자 오래 두면 동물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식의 경고성 댓글이 여럿 달렸다.
반려견이 1천만마리가 넘는 나라 독일에서 개를 키우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동물보호법이 엄격할 뿐 아니라 계속 강화되고 있어서다. 연방정부는 2021년 ‘동물복지 반려견 조례’를 개정해 개 키우는 사람의 의무를 강화했다. 애초 정부 초안에는 하루에 최소 두차례, 1시간 이상 산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독일 내 반려견 상당수가 필요한 만큼의 운동과 환경적 자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새 과학적 증거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픈 개는 어쩌냐’ 등 반론이 이어졌고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최종안엔 의무 산책시간이 빠졌다. 대신 “개집 밖에서 충분한 야외운동”을 품종·나이·건강상태에 맞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반려견이 실내에선 밖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묶어놔서는 안 되며, 20주 이하 강아지는 하루에 최소 4시간 이상 보호자와 접촉해야 하고, 훈련용이더라도 핀치 칼라나 초크 체인 등 개에게 고통을 주는 장치는 사용이 금지됐다. ‘개는 장난감이 아니라 인간의 이웃’이라는 동물복지 철학에 기초한 조항들이다. 이 밖에도 반려동물 복지를 위한 법과 규정은 연방정부는 물론 주별로도 상세히 마련돼 있다.
한국에선 지난달 27일부터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갔다. 반려견을 2m 이하 짧은 줄로 묶거나, 어두운 공간에서 장기간 기르는 것을 금지하고, 학대당한 동물을 소유자한테서 격리하는 기간을 기존 3일에서 5일로 늘리는 등의 내용이다. 독일에는 한참 못 미치는 내용이다. 특히 학대 동물과 주인을 이틀 더 떨어뜨려놓는 게 문제를 해결할까 싶다.
하지만 결국 법보다 더 중요한 건 반려동물을 대하는 사회와 시민의 인식 아닐까. 웬만한 각오가 아니라면 반려동물 키우기에 도전하기 어렵고 주변에서도 뜯어말리는 사회, 언제쯤 될 수 있을까.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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