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을 권위주의
[크리틱]크리틱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 현장은 여느 놀이기구 앞 못지않은 대기줄을 자랑했다. 카텔란의 세계적 이름값에 전시를 주최한 리움미술관의 위용으로 화제성은 예고된 터였다. 하지만 대중성은 예상 밖이었다. 한 미학 전공생이 전시장 벽에 붙은 카텔란의 바나나를 까먹은 ‘바나나 소동’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고, 그 덕인지, 탓인지 5월 예매표는 동났다. 난해한 현대미술의 대중적 흥행이라니.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상황이 궁금해졌다.
애초에 호기심을 부르는 조합이었다. 내로라하는 권위의 리움과 권위라면 개나 줘버릴 카텔란의 만남이었다. 막말이 아니라 고상함과는 담쌓은 카텔란이다. 예술가라 불리길 원치 않는 카텔란은 미술 작업자를 자처한다. 괴짜로 불리는 그의 전적은 화려하다. 작가 이력을 막 쌓을 무렵 살아있는 당나귀를 뉴욕 소호의 고급 갤러리에 밀어 넣었다. 당나귀는 샹들리에 아래서 울어 재꼈고, 똥도 쌌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는 성경 말씀 곧이곧대로 교황을 조준해 운석을 떨어뜨린 작품으로 종교계까지 기함하게 한 그다.
대단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의 대학도시 파두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가난하기도 했지만 “같은 일을 두달 넘게 해 본 적 없다”는 그에게 학교는 언감생심이었다. 얹혀살던 여자친구에게 밥값이라도 할 요량으로 만든 철제 램프가 작품 비스름한 인테리어 용품으로 팔리며 그에게 작가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가난한 미술을 뜻하는 ‘아르떼 포베라’의 유행으로 고급미술을 조롱할 수 있다면 쓰레기더미에도 찬사를 보내던 현대미술에 그는 편승했다.
그의 작업이란 게 어쩌면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른다. 1992년 밀라노에서는 전시를 앞두고 작품이 마땅치 않자 경찰서에 작품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했다. 그러곤 신고서를 액자에 넣어 전시했다. 이듬해엔 명성 높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고선 전시공간을 광고대행사에 팔아넘겼다. 업체는 그 자리에 향수광고를 내걸었고, 카텔란은 <작업은 나쁜 일>이란 제목을 붙였다. 암스테르담 개인전에서는 다른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작품을 통째로 훔쳐 전시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예술과 상업의 부조리에 대한 냉소주의라는 열광이 뒤따르지만, 거창한 수식을 떼면 표절과 도용이 카텔란의 작업에 넘쳐난다. 해야 하거나 해선 안 되는 규칙 따윈 안중에도 없는 카텔란이다. 그러니 갤러리 벽에 붙은 바나나를 떼먹는다고 대수이며, 바나나를 까먹은 행위가 재탕인들 어떠할까. 테이프로 바나나 하나를 벽에 고정한 <코미디언>이 12만달러를 호가한다 한들 엄밀히 말해 작품값이 아닌 카텔란의 이름값 아닌가. 설마 카텔란이 작품을 직접 만들 거라 믿는다면 너무 순진하다.
카텔란은 ‘탈작업실 작가’로 불린다. 카텔란에게 조각을 의뢰하면, 카텔란은 석고뜨기 장인에게 작품을 주문한다. 카텔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가 남의 손을 빌려 작업한다.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해서 개념미술이라 하는데, 카텔란은 개념도 아니고 다만 육감대로 떠올린다고 손사래 친다. 복제와 표절, 도용과 조롱이 용인되는 현대미술이다. 그 앞에서 세상 하나뿐인 원본인 양 우러르는 태도는 카텔란의 작품 제목처럼 코미디다.
그래서 전시는 파격이었을까. 미술관은 작품을 위해 전시장 바닥도 깼지만, 관객에게는 여전히 권위적이다. 1작품, 1요원으로 경비가 삼엄해 관람하는 건지 감시받는 건지 헷갈렸다. 바닥에 깔린 원형 카펫 앞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는 엄중했다. 이탈리아 지도가 그려진 카펫은 관객이 모르고 밟아 더러워져야 제목 <아름다운 나라>가 비로소 의미를 갖는 작품이지만 관객의 경험은 허락되지 않았다. 눈으로만 보려면 차라리 벽에 걸지, 권위주의가 웬 말인가, 시위라도 할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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