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자기 눈 안 들보부터 보라셨는데

한겨레 2023. 5. 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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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게티이미지뱅크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해 5월, 두명의 인권활동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할 때, 한 개신교 매체에서 대다수 국민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기사를 냈다. 차별금지법 때문에 ‘성범죄 전과자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취업하는 일에 동의하겠느냐’는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94.6%가 반대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거짓이 포함된 엉터리 설문조사다.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성범죄자는 10년 이내 기간 동안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을 운영하거나 취업할 수 없다. 교사나 공무원도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스토킹 범죄까지 포함해 성범죄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당연퇴직되고 임용 역시 일정 기간 제한된다. 즉,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성범죄 전과자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취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성범죄를 저지른 이의 취업제한 범위에 종교시설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탓에 목회자가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저질러도 다시 교회로 돌아와 청소년 담당 목회를 맡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회법에서 규제할 수 없다면 교회법에서 막으면 되는데, 놀랍게도 2018년 이전까지 한국 주요교단 헌법에 성범죄 징계가 포함된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최근 몇개 교단에서 헌법에 성범죄 단어를 포함시키는 변화가 있긴 하지만 교단을 탈퇴하거나 옮기는 방식으로 징계를 피하면 그만이다.

사건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교회가 성폭력에서 안전한 곳이 되긴 어렵다. 형법에서는 협박과 폭력이 동반돼야 강간으로 인정하는데, 성직자가 가해자인 교회 내 성폭력의 경우엔 명백한 협박과 폭력의 증거는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목사가 여성 신도를 불러내 에덴동산에서는 모두가 벗고 살았다면서 영적인 사람은 벌거벗고 있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며 나체로 있게 하고, 아브라함이 소중한 아들을 하나님에게 바쳤듯이 너도 가장 소중한 것을 나에게 바칠 수 있겠느냐는 말로 성적인 요구를 한다. 성경과 목사님의 말씀은 거부할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당사자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인지하는데도, 신고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달만 해도 한 40대 목사가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자매를 고등학생일 때부터 장기간 성폭행 해오다가 경찰에 붙잡혔고, 이번 달엔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서 지내다 만 18세가 돼 독립하는 청년을 지원하는 센터를 운영하는 목사가 센터 입소자들을 대상으로 준강간 및 강제추행 등을 일삼은 혐의로 구속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2022년 한해 동안 접수된 교회 내 성폭력 사건 중 가해자가 목사나 전도사 등인 경우가 전체 사건의 71.1%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또, 기독교 매체인 <뉴스앤조이>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목회자·전도사 등 성직자 259명의 형사사건 283건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 479명 중 미성년자가 240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성인 피해자 중 156명이 20대였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주된 피해자란 얘기다.

현실이 이런데도 개신교계는 오는 7월 서울광장에서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를 열겠단다. 진심으로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다면 이렇듯 심각한 교회 내의 성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성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목사 80명 가운데 교단 내 징계가 확인된 이는 1명에 불과하다는 교회개혁실천연대의 발표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가짜 뉴스로 차별금지법 반대하고, 같은 이웃을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음란’이니 ‘타락’이니 낙인찍는 일은 서슴지 않으면서, 정작 교회 내 성폭력엔 눈감는 개신교계 움직임이 참으로 안타깝다. 예수님은 자기 눈 안의 들보부터 보라 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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