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정신, 국민과 함께한다더니… 통제된 5·18기념식

안경호 2023. 5. 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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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정신, 국민과 함께.'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기념식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구심체"라고 5·18의 의미를 부여했다.

윤 대통령이 올해도 5·18정신을 개정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데다, 기념식을 주관한 국가보훈처와 대통령실 경호처가 윤 대통령 경호 문제를 이유로 과도하게 5·18묘지 출입을 통제해 곳곳에서 참배객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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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비해 과도하게 참배객·취재진 입장 통제
"헌법 전문 수록 언급 없어" 윤 대통령에 섭섭함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대통령실 제공

'오월 정신, 국민과 함께.'

18일 광주광역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 주제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기념식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구심체"라고 5·18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빗속에 치러진 이날 기념식은 윤 대통령의 평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윤 대통령이 올해도 5·18정신을 개정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데다, 기념식을 주관한 국가보훈처와 대통령실 경호처가 윤 대통령 경호 문제를 이유로 과도하게 5·18묘지 출입을 통제해 곳곳에서 참배객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기념식 시작 2시간 전인 이날 오전 8시쯤부터 5·18묘지에선 기념식 주제와 동떨어진 상황들이 연출됐다. 대통령실과 보훈처, 경찰은 5·18묘지 입구에서부터 기념식장 입장 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참배객들의 출입을 막았다. 참배객들은 "국민과 함께하겠다면서 왜 길을 막느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 시민들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참배객들은 5·18묘지 내 '민주의 문'을 지나 기념식장으로 들어가는 윤 대통령을 향해 "물러나라"고 외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입장 카드가 없는 시민들도 기념식장 앞 검색대 주변까지 출입을 허용했다.

국가보훈처 직원들이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장 뒤편에 설치한 단상에서 취재 기자들이 벗어나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

보훈처가 기념식 행사 취재기자들의 인원을 제한하고 기자들이 기념식장 내 특정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언론 통제 논란도 불거졌다. 보훈처는 그동안 기념식 행사와 주변 상황을 취재하는 광주지역 중앙언론사 주재 기자들에게 출입 비표를 신청받아 별다른 제한 없이 지급해 왔지만, 올핸 비표 지급 대상자를 4명으로 제한했다. 지역 언론사(광주·전남기자협회)에도 30장만 제공했다. 보훈처는 특히 기념식장 뒤쪽에 높이 1m 길이 20여 m짜리 단상과 취재부스를 설치해 기자들이 이곳에서만 취재하도록 했다. 보훈처는 "대통령실에서 풀(POOL) 기자단을 운영하기로 해 지역 언론사 몫의 비표 발급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그간 5·18 기념식 취재는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대통령실 풀 기자단이 대통령의 공적 활동을 취재하고, 기념식 진행과 주변 상황은 지역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했다.

18일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참배객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를 시작하자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하라'는 문구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념식에 참석한 일부 참배객들은 윤 대통령을 향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추모객 20여 명은 윤 대통령이 기념사를 낭독하는 내내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하라' '대통령은 사과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윤 대통령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자, 유족과 시민들은 기념식 도중 수록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힌 소형 펼침막을 들어 올리기도 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식장을 빠져나가던 한 유족은 "'인공지능(AI)과 첨단 과학기술 고도화', '광주 호남의 산업적 성취와 경제 발전' 등 오월 정신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기념사에 담긴 이유를 모르겠다"며 "진실 규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으니, 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이 의심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년보다 짧은 기념식 진행 시간(42분) 등을 두고도 "성의가 없다"는 뒷말이 나왔다. 기념식장 밖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기념식을 지켜본 이모(54)씨는 "역대 기념식은 50분 이상 진행됐는데 올해는 그보다 짧았고, 기념식 행사 구성도 뭔가 헐겁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광주=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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