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을 키워야 국가 경제 부흥”… 英·佛, 국경 문턱 낮추며 유치전
[박건형의 홀리테크] 유니콘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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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corn Kingdom(유니콘 왕국).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의 영어 명칭은 UK(United Kingdom)입니다. 하지만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이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그는 지난달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영국 정부 광고에서 “유니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유니콘은 당연히 전설 속 일각수는 아닙니다. 기업 가치 10억달러(약 1조3400억원)가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런 기업이 너무나 희귀해 마치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나 존재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2013년 벤처 투자자 에일린 리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입니다. 참고로 10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은 데카콘, 1000억달러 이상은 헥토콘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기업이 실제 있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중국 바이트댄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중국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 쉬인이 헥토콘입니다. 데카콘은 50곳이 넘습니다.
국경까지 낮춘 영국
사실 더 이상 유니콘은 신기한 존재가 아닙니다. 중국 후룬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유니콘은 1361곳으로 이들의 기업 가치를 모두 합하면 4조3000억달러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 유니콘 통계에는 극도의 쏠림 현상이 숨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이 666곳, 중국이 316곳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낙 영국 총리가 유니콘 왕국을 들고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국은 제조업에서 세계 최강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문화 강국의 면모는 여전합니다. 하지만 현재 스타트업 육성에서는 상대적으로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유니콘을 키워야 영국 경제 부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현재 영국 유니콘은 49곳입니다. 원래 강점을 가진 금융을 기반으로 한 핀테크 기업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케임브리지의 생명과학 기업 CMR서지컬처럼 딥테크 스타트업도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최근 강점을 보이고 있는 그래프코어나 데이터 사이언스와 인공지능(AI)에 기반을 둔 클레오와 온피도도 주목받는 기업입니다.
영국 정부는 국경까지 낮췄습니다. 지난해 5월 세계 톱 50위권 대학 졸업생들에겐 당장 일할 곳을 정하지 않아도 영국에 2~3년 거주하며 첨단 산업 분야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고도 인재 비자(HPI)’를 신설했습니다. 비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면서 유니콘 왕국의 토대가 될 글로벌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겁니다.
수낙 총리는 스타트업 유치를 위해 IT 강국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정책도 내놓고 있습니다. AI 연구 지원 예산을 1000만달러 증액했고, 수퍼컴퓨터 구축에도 10억파운드를 배정했습니다.
영국 정부의 새로운 슬로건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BBC는 “케임브리지에서 탄생한 반도체 업체 ARM은 일본 회사인 소프트뱅크에 속해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AI 회사 딥마인드는 기반은 영국이지만 구글 자회사”라며 “영국은 시작하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확장하기는 훨씬 어려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훨씬 많은 자본이 있고, 다른 나라보다 규제가 압도적으로 적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맹추격하는 프랑스
유니콘 사육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 곳이 영국만은 아닙니다. 영국의 이웃이자 영원한 라이벌 프랑스도 스타트업 육성에 진심입니다. 영국 스타트업들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받고 있지만 추세는 좀 다릅니다. 프랑스 스타트업 투자액은 2021년과 2022년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영국은 같은 기간 22% 감소했고 독일은 43%나 줄었습니다.
프랑스 스타트업들의 약진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수립한 ‘프랑스 2030 계획’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에는 2017년 고작 3곳의 유니콘 기업만 있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래의 하이테크 챔피언’을 만들겠다면 300억유로를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2025년까지 유니콘 25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미 프랑스 유니콘은 26곳입니다. 정부 정책으로는 보기 드물게 조기 달성한 겁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2030년까지 유니콘 100곳을 육성하겠다”고 했습니다. 2년 전보다 꿈이 훨씬 커진 것이죠. 25번째 유니콘이 된 로봇 회사 엑소테크(Exotec)의 투자 유치 기념식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스타브 잡스 애플 창업자처럼 터틀넥을 입고 “프랑스 전역에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자”고 외쳤습니다.
프랑스 역시 영국처럼 스타트업 인재 확보를 위해 국경을 낮췄습니다. 프렌치 테크 비자는 기업가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개적으로 초대할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유럽연합(EU) 국가 사람이 아니더라도 패스트 트랙을 밟을 수 있고, 4년간의 거주와 사업이 보장됩니다. 스타트업을 설립하거나 스타트업에 고용되면 배우자와 자녀까지 비자가 주어집니다. 유로뉴스는 “세계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스타트업 직원 비자”라고 평가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적인 유니콘 사육이 실제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까요. 프랑스24 방송은 “유니콘이 투자받은 자금의 80%는 해외에서 온다”면서 “국가 경제 차원에서 놀라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유니콘이 늘어나는 것이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막대한 경제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유니콘 기업의 경우 빠른 시간 동안 급성장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과 인재 채용 규모가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급속히 늘어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전 세계 인재와 자본을 빨아들이는 실리콘밸리와 ‘창업 국가’의 표본인 이스라엘을 벤치마킹하는 정책을 전 세계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유니콘은 현재 14곳입니다(중소벤처기업부 기준으로는 18곳입니다). 전 세계가 유니콘 유치를 위해 뛰고 있지만 한국은 내부 육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국경이 없는 스타트업의 시대에 과연 이런 방식으로 충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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