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셀로', 지하 벙커 같은 무대…인물들 불안감 반영"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오셀로' 오셀로 역의 배우 유태웅과 이아고 역의 배우 손상규가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언론공개회를 하고 있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2023.05.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검은 복수여 부풀어 올라라. 내 심장은 독사에게 물렸다. 피 끓는 증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 그들을 삼켜버릴 때까지."

아내 데스데모나가 간통을 했다고 믿게 된 무어인 장군 오셀로는 복수심에 불타 증오의 말을 내뱉는다. 부하 이아고가 속삭이는 거짓된 말들에 의심의 싹을 틔우고 머릿속을 지배당한 오셀로는 결국 질투에 휩싸여 복수를 다짐하고 파멸에 이른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지난 12일 막을 올렸다. 정통극을 선보이는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 시리즈의 부활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오셀로' 오셀로 역의 배우 박호산(왼쪽), 데스데모나 역의 배우 이설, 에미리아 역의 배우 이자람(오른쪽)이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언론공개회를 하고 있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2023.05.18. pak7130@newsis.com

"'오셀로'에 대한 첫인상은 '불안'이었어요. 모든 인물에게 불안이 잠재돼 있죠."

박정희 연출은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오셀로' 프레스콜에서 이같이 밝혔다.

"흔히 '오셀로'는 이아고의 연극이라고 해요. 하지만 거기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왜 셰익스피어는 제목을 이아고라고 안 하고 오셀로라고 했을까요. 오셀로가 가진 이질적인 특징과 감정을 지금 시대의 관객들에게 환기하고 싶었어요."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내면을 반영한 무대는 어두컴컴하다. 차가운 콘크리트 질감의 벽면이 사각으로 둘러싸고, 뒤쪽까지 깊게 들어간다. 무대 앞쪽엔 물웅덩이를 길게 만들었고, 그곳엔 흔들리는 물그림자가 비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오셀로' 이아고 역의 배우 손상규가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언론공개회를 하고 있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2023.05.18. pak7130@newsis.com

박 연출은 "무대는 지하 벙커로 콘셉트를 잡았다. 무대·조명 디자인을 맡은 여신동 감독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가장 불안한 장소이자 안전한 장소의 개념으로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어 "물은 '죽음의 강'이다. 지하 공간에는 물이 계속 흘러내린다"며 "어떻게 보면 현대판 지옥도를 축약했는데, 처음엔 데스데모나가 그곳에서 죽는 장면으로 연습했다가 효과적이진 않아 수정했다"고 덧붙였다.

주인공 오셀로는 동갑내기 두 배우 박호산과 유태웅이 번갈아 연기한다. 전쟁 영웅으로 칭송 받지만 질투와 불안 속에 추락하는 불완전한 인간을 그려낸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오셀로' 데스데모나 역의 이설(오른쪽)과 에미리아 역의 이자람이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언론공개회를 하고 있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2023.05.18. pak7130@newsis.com

박호산은 "대본을 읽었을 때 오셀로가 바보 같았다. 질투의 힘이 얼마나 강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열등감보다는 사랑이 컸기에 질투도 생기고 큰 실수를 한다고 해석했다. 또 능력 있고 날이 서 있는 장군이여야 이아고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을 때 큰 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태웅은 "데스데모나에게 물어보면 간단할 일을 혼자 끙끙 앓는 게 저희도 답답했다. 자존심이나 자존감일 수 있는데, 용병으로 홀로 가진 고독감이 있지 않을까 했다"며 "무어인이 흑인이라고 하지만 분장을 특별히 하진 않았다. 연극적인 약속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광기 어린 욕망에 사로잡혀 간교한 계략을 꾸미고 모두를 불안 속으로 몰고 가는 이아고 역에는 손상규가 활약한다. 그는 "가장 고귀한 인간이 평범하고 저열한 인간에게 추락 당하는 얘기라고 이해하고 인물의 구조를 짰다"며 "이아고는 극을 작동시키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연극 '오셀로' 연출 박정희(오른쪽부터), 데스데모나 역의 이설, 오셀로 역의 박호산, 유태웅, 에미리아 역의 이자람, 이아고 역의 손상규가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언론 시연을 마치고 간담회를 하고 있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2023.05.18. pak7130@newsis.com

드라마 '나쁜형사'에 박호산과 함께 출연한 이설은 연극 데뷔다. 그는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망설였지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박호산 선배님과 연출님이 격려해줬다"며 "데스데모나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성녀 이미지가 강한데, 연출님과 대화하며 자기 인생을 선택한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리려 했다"고 전했다.

판소리부터 뮤지컬까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소리꾼 이자람이 데스데모나를 돌보는 이아고의 부인 '에밀리아'로 분한다. 박정희 연출과는 연극 '오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자람은 "어렸을 때부터 연극에 대한 동경이 컸다"며 "에밀리아는 이아고가 친 그물에서 가장 중요한 손수건(의심을 키우는 매개체)이라는 톱니바퀴를 맡는 캐릭터다. 마지막 장면에선 관객들이 이아고와 오셀로에게 하고 싶은 욕을 시원하게 해줘야 하는 임무를 다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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