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찾은 한국 원폭 피해자들…“78년간 미·일 한마디도 없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일 정상의 위령비 공동 참배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합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1세인 심진태(80)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18일 오후 한·일 취재진이 빼곡히 모인 일본 히로시마 시청 기자실에서 무겁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4명 중 12명이 피해 1세대 고령자
“한·일 정상의 위령비 공동 참배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합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1세인 심진태(80)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18일 오후 한·일 취재진이 빼곡히 모인 일본 히로시마 시청 기자실에서 무겁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심 지부장은 1945년 8월6일 미국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하던 그때 히로시마에 있었다. ‘군도’ 히로시마에 강제동원되어 온 아버지가 어머니를 불러들이면서 심 지부장이 태어났다. 1943년생인 심 지부장은 갓 두살이었다.
심 지부장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해 히로시마에서 19~21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참배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없이 기쁘고, 감정이 벅찼다”고 말했다. 이 참배를 두고 한국에선 ‘일본의 가해 책임을 물타기 하려는 것’이라는 비판 의견도 있지만, 피폭 당사자들은 ‘환영’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이런 뜻을 밝히기 위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 14명은 히로시마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14명 중 12명은 원폭 피해자 1세로 80대 이상의 고령이다.
이들이 환영의 뜻을 밝힌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방문하는 것도, 한·일 정상이 함께 ‘한국인 위령비’에 참배하는 것도 원폭이 투하된 지 7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직 일본 총리가 참배한 것은 1999년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총리 이후 두번째다. 정원술(80)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미국이고,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본이다. 78년이 지났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사과 등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같이 회견에 나선 성득찬(78) 협회 경남지부장도 얼마 남지 않은 피폭 1세다. 그는 “내 생일이 1945년 8월6일 오전 9시30분쯤이다. 원폭이 터진 직후에 태어났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에서 원폭이 투하된 시각이 오전 8시15분쯤이니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 성 지부장이 태어난 것이다. 그는 “집이 불타고 출산이 임박한 어머니가 도와줄 사람이 없어 방공호에서 태어났다”며 “원자폭탄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히로시마에서 터진 원폭으로 14만여명이 희생됐고,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출신자는 3만명(일본 정부는 5천~8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반도 출신 원폭 피해자들은 한·일 양국에서 오랫동안 소외된 존재였다. 일본에선 ‘세계 유일의 피폭 피해국 일본’만 강조됐고, 한국에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로 취급됐다. 원폭 피해는 유전된다는 이미지 때문에 피폭 사실을 숨기는 이들도 많았다.
이들이 추가로 원한 것은 한·일 정상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간담회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2016년 5월 이곳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쓰보이 스나오 등 일본 피폭자 2명과 만나 악수를 하고 등을 쓰다듬었다. 정식 간담회는 아니었지만, 피폭자들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피폭 1세인 정정웅(83) 협회 서울지부장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도 한·일 정상이 참배하는 자리에 참여하고 싶다. 기회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심진태 합천지부장도 “오기 전부터 한·일 정상 참배 자리에 참여시켜 달라고 정부 쪽에 여러번 요청을 했는데, 답변이 없다. 우리 얘기를 직접 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히로시마/글·사진 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여의도순복음, ‘이단 논란’ 전광훈 편 서나…“주사파 잡자”
- 바이든-기시다, 북·중·러 견제 밀착…‘한미일 삼각 협력’ 강조
- ‘간호법 거부권’ 집회 하루 앞두고…경찰·교육부, 대학 압박 정황
- 헌법이 금지한 ‘허가제’ 퇴행?…경찰청장 “불법 전력 땐 집회 금지”
- 이승만 몰아낸 4·19혁명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됐다
- 기후위기 세계를 덮치다…“극단적 폭염 가능성, 30배 높아져”
- 윤 대통령, 주먹 쥐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접점 못찾는 ‘오염수 시찰’…정부 “협의 원만히 진행” 되풀이
- 앗, 뱀? 도심 아파트에 ‘독사’ 출몰…혹시 물렸다면
- [단독] 의대 입학정원 3570명으로…2025학년도 입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