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1억원 안내면 亞게임 못나가" 승마 국대 4년 피땀,물거품 되나

전영지 2023. 5. 1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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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연합뉴스

승마 국가대표 선수들이 자비 1억원을 내지 않으면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서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대한승마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15일 이사회를 통해 선수들에게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말 수송비 등 최소 1억원을 자비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기로 의결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을 고대하던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날 협회로부터 유선상으로 '자비 출전 여부를 결정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말 수송비는 13억원으로 추산되며, 이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의 5억원을 2배 넘게 초과하는 금액. 협회는 현재 협회의 재정 여건에서 이 금액을 부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자비 출전을 결정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말의 항공 수송을 검역 및 안전을 위해 독점계약을 맺은 독일의 한 대행사에 일임하면서 한국-항저우 직항노선이 아닌 한국-독일-항저우를 거치는 노선을 이용하게 됨에 따라 수송비가 폭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4년 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마장마술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은메달을 따낸 국가대표 김 혁의 아버지 김정연씨는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한국은 베스트 멤버로 나서면 이번에도 메달이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선발전 순위가 아닌 자비 출전이 가능하고, 자비 출전을 희망하는 선수들로만 팀이 구성될 경우 후순위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메달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순위가 높은 선수들도 굳이 1억원이라는 큰돈을 써가며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현실을 짚었다. "승마 국가대표들에게 아시안게임은 특히 중요한 대회다. 5월 말 엔트리를 확정한다는데 시간이 많지 않다. 4년을 준비해온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력보다 돈 있는 선수만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다면 앞으로 승마 꿈나무 양성도 쉽지 않을 것"라며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은 아시아의 선진국이고, 승마는 매번 메달을 따온 종목이다. 지금까지 한국 승마 역사상 자비로 출전한 아시안게임은 한번도 없었다. 메달권 한국 선수들이 돈이 없어 아시안게임을 나오지 못했다고 하면 국제적 망신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협회는 앞서 세 차례 아시안게임에선 기업 후원금으로 경비를 부담했다. 그러나 승마가 연루된 국정 농단 사태 이후 후원금이 끊기며 재정난을 겪었고, 승마 국가대표 출신 한화그룹 3남 김동선 한화 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지난 3월 물러나면서 어려움이 닥쳤다. 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박서영 회장(김동선 본부장의 법률고문)이 당선된 후 협회에 한화넥스트 쪽에서 임원들을 대거 파견해 승마인들의 기대가 컸다"며 "그런데 김동선 본부장이 협회를 좌우한다는 기사가 나오자 파견된 한화넥스트 직원들이 전원 사임했고, 한화그룹 차원에서도 지원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화 갤러리아 측은 "김 본부장이 협회에 대한 지원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약속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때 승마가 모든 것이었던 기업이 떠난 자리, 4년간 아시안게임을 기다려온 선수들이 울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논의중이다. 쉽지 않은 난제다. 돈 있는 국가대표만 아시안게임 출전이 가능하게 된다면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출전권과 순위를 치열하게 가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의 의미도, 아시안게임의 본질도, 스포츠의 정신도 흔들리게 된다. 지원 문제로 국가대표들의 출전이 불발될 경우, 엘리트 체육 활성화를 공언해온 정부로서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국비로 정해진 국제대회 파견비를 떼어내 지원해야 할 경우 12억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결국 한정된 예산에서 다른 종목 훈련비나 예산을 쥐어짜서 승마에 몰아줘야 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특정종목에만 10억원 이상을 몰아주는 건 종목 형평성에 맞지 않다. 또다른 방법은 승마협회 자체 기금이다. 현재 18억원 정도가 적립돼 있는 협회 자체 기금을 4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도 원금 5억6000만원을 소비했고, 최근엔 이 기금을 담보로 협회 운영을 위해 2억 대출까지 받은 상황. 한때 70억~80억원에 육박, 이자 수입으로 협회를 운용해왔던 이 기금을 바닥내는 것이 향후 체육단체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합당한가, 협회 집행부의 문제를 국비나 기금에 의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옳으냐에 대한 비판과 이론도 존재한다. 이 기금의 대한 승인권은 문체부에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대한체육회에 문의는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문체부로 아직 공식 요청이나 문의는 없었다"고 확인했다. "대한체육회와 승마협회 자비출전 문제를 파악하고 과거 사례, 자비부담 사례, 종목 형평성, 협회의 재정확보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각도로 방법을 찾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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