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워싱턴 컨센서스 수정 공식화 …"中과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
◆ 세계경제 新질서 ◆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이 열리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세운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해 서방 국가들이 구체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첨단 산업, 안보 분야에서 지속돼온 미·중 갈등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주요국의 경제안보 전략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주요 당국자들이 신(新)국제질서에 관해 내놓은 발언을 살펴보면 미묘하게 변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전개해온 대중 봉쇄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는 '강온 양면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말 브루킹스연구소 강연에서 "직접적인 국가 안보를 이유로 최첨단 반도체 기술의 대중국 수출을 세심하게 맞춤형으로 규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설리번 보좌관은 "중국이 말하는 것처럼 기술 봉쇄가 아니다. 좁은 범위의 기술과 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도전하려는 소수 국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선을 그었다.
그 직전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존스홉킨스대 강연에서 "미·중은 함께 살아가고 글로벌 번영을 공유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우리는 경쟁이 갈등에 가까운 것이 되지 않게 할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존 윌리엄슨 미국 정치경제학자가 1989년 미국식 시장경제체제 확산으로 정의한 '워싱턴컨센서스' 개념은 남미 개발도상국의 경제위기 극복과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촉발하며 세계화를 이끌었지만 최근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이 급부상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고,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확보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로벌 무대에서 미국의 군사·경제적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북·중·러 등 권위주의 국가의 도전이 거세졌다. 설리번 보좌관은 "새 국제질서를 구축해 수억 명을 가난에서 구해내고 기술혁명을 이루면서 다른 나라의 번영을 도왔던 미국 역할에 균열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산업 공동화, 중국의 군사적 야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지정학적 안보 위협,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 시급성, 불평등과 민주주의 위기 등 문제점을 열거했다. 신워싱턴컨센서스는 미국이 경제안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미·중 고위급 인사 회동이 양국 정상 간 전화통화나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1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곧 만나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시기를 언급하지는 않고 "우리는 만날 것"이라고 답했다. 시 주석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워싱턴컨센서스는 우선 미국에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같은 첨단기술 제조시설 건설을 촉진하는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같은 산업전략을 담고 있다. 또 동맹·파트너와 함께 탄력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나간다. 전통적인 무역 거래를 넘어 핵심 과제에 초점을 맞춘 혁신적인 국제 경제 파트너십도 만들어 간다는 구상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선별적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하면서 경쟁하더라도 대립하거나 충돌을 막는 데 집중한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교역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6906억달러에 달했다. 중국의 값싼 공산품이 미국으로 유입되지 않으면 미국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도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중국과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과 다양화(diversifying)를 지지한다"며 "우리 자체 역량 및 안전하고 탄력적인 공급망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군사력 확장이나 인권 탄압에 쓰일 수 있는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등 첨단 분야 수출 통제는 더욱 강화한다. 범위를 좁혀 집중적으로 타격하겠다는 뜻이다.
미·중 간에 경쟁을 관리하고 협력하기 위한 개방적인 소통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 사태 이후 얼어붙었던 미·중 관계에 최근 훈풍이 불고 있다. 또 옐런 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 미국 경제장관의 중국 방문이 추진되고 있다. 신워싱턴컨센서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신워싱턴컨센서스가 국가별 보조금 경쟁을 촉진하고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면서 미국으로만 투자가 쏠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 강계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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