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서 논의하는 ‘핵무기 없는 세계’ …세계의 핵 위기 어디까지 왔을까

박은하 기자 2023. 5. 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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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18일 한 경찰관이 정상들이 방문 예정인 히로시마평화공원을 순찰하고 있다./ 교도AP연합뉴스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 히로시마에서 19일부터 개최되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는 세계가 핵군비 경쟁의 수령에 빠질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서 열린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대립이 격화하고 북한의 핵개발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에서 G7 정상회의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요한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7일(현지시간)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히로시마로 출국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출국 전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제 (핵무기 보유국이)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라며 “지금은 군축, 그 중에서도 핵 군축 활성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발언은 핵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반영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년째 핵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으며, 7월1월까지 핵무기 저장시설을 완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 중 가장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러시아의 핵 위협을 두고 “현실성 낮은 여론전”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발 핵무기 위협은 세계의 긴장을 높이고 비핵보유국의 핵개발 충동을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와사키 아키라 핵무기폐기국제캠페인(ICAN) 국제공동운영위원은 “(비확산과 군축을 전제로 한) 세계의 핵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며 “핵보유 5개국에는 이성이 있어 이상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전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무너지고 있다”고 도쿄신문에 말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핵탄두 5428발을 보유하고 1644발을 실전 배치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5977발을 보유하고 1588발을 배치한 상태이다. 영국은 225발, 프랑스는 290발, 중국은 350발을 보유하고 있다. NPT 비회원국인 이스라엘(90발), 인도(160발), 파키스탄(165발), 북한(20발)도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과 북한이 있는 동아시아는 중장기적으로 가장 위험한 ‘핵 화약고’로 간주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공산당대회에서 강력한 전략적 억지시스템 구축을 언급하며 핵전력 중시 방침을 선언했다. ‘핵선제 불사용’ 원칙과 함께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핵전력 보유’를 주장해 온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미·중 경쟁이 격화되고 대만 문제로 남중국해에서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중국이 미국과의 전력차를 핵무력 증강으로 넘어셔려 한다고 보고 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운용 가능한 핵탄두 보유수는 400발 수준으로 추정되며 2035년까지 1500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한국 보수 일각의 자체 핵무장 주장 역시 국제사회에서는 NPT 체제를 위협하는 주장으로 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내 자체 핵무장 여론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위협시 미국이 핵이나 통상 전력으로 한국을 방어하는 ‘확대억지’ 강화책을 담은 ‘워싱턴 선언’에 합의했다.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반도 주변 정기·지속 배치도 약속했다. 그러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이를 비난하면서 필요시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 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마이니치신문은 “북한과 한·미 양측이 ‘힘의 과시’를 이어가는 가운데 한반도 핵을 둘러싼 긴장완화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G7정상은 회의 첫날인 19일 피폭의 실상을 알리는 히로시마평화공원 원폭자료관을 시찰할 예정이다.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환경, 러시아의 핵 위협을 감안한 핵군축의 방책 등을 논의한다.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과 핵무기용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FMCT) 같은 핵군축 방안을 논의하고 별도의 성과문서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G7 정상회의에서 다뤄질 핵 군축 논의가 중·러 견제책으로 해석된다는 점은 근본적 한계로 작용할 전망이다. 히로시마를 지역구로 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역시 국제사회에서 일관되게 핵 군축을 주장하며 명분을 쌓아 왔지만, 최근 기시다 총리를 표지 인물로 선정한 <타임>은 “핵무기 없는 세상과 일본의 방위력 증강은 모순”이라고 진단했다.

가와사키 ICAN 공동운영위원은 “핵무기는 본질적으로 비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나라에도) 사용도 위협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1일까지 사흘간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는 핵 군축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 에너지 및 식량 안보, 기후변화 등에 대해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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