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전 정권 때 잘나갔다는 이유로
편가르기 반복해선 곤란
탕평인사는 '포용과 확장'
그래야 국민도 환영할 것
미국의 화합 인사를 거론할 때 등장하는 단골 사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 과정의 최대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초대 국무장관에 앉힌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아닌 자기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의 장점을 놓치지 않았다. 갈라진 민주당을 하나로 포용하는 데도 적합한 카드라고 판단했다.
내 편이 아닌 상대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포용의 리더십'은 국가원수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다. 진영 논리를 탈피해 최선의 인사 포석으로 성과를 거둬야 하는 게 지도자의 사명이다. 관료사회가 요즘 인사 문제로 들썩거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차출 대상자들이 거론되면서 인사 이동의 큰 장이 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면 전환용 개각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고위직 인사가 잇따를 것이라는 게 관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차기 인사가 '탕평'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능력과 자질보다는 '우리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는 것이다.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국세청 1급 인사가 초미의 관심사다. 쟁쟁한 후보들이 1급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가운데 호남 출신, 혹은 전 정권 때 잘나갔던 관료는 승진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관가에선 인사철만 되면 'A는 전 정권 때 잘나가던 사람'이라는 내용의 투서와 비방이 난무한다. 본인 실력으로 요직을 차지했던 경우라도 이런 프레임에 쉽게 갇혀버린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공무원을 지역색과 전 정권 연줄로 엮어 쳐내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 보수 정권 때 '호남 홀대'의 전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국세청 차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국세청 1급 자리를 차지한 호남 출신 관료는 2명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더 심해서 호남 출신이 단 1명도 없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역 편중 인사의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현직 장차관 중 호남권 비중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주요 부처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TK(대구·경북) 출신이 호남 출신보다 앞선다는 관전평이 자주 들린다. 위로 올라갈수록 '관운'이 인사를 좌우한다고는 하지만 정치 성향과 충성도를 따져 뽑아야 할 자리는 따로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새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히 인사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이념적 지형이 다른 기관장들이 버티고 앉아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면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인사에게 '전 정권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필요는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장관을 역임했던 한 원로는 "용산 대통령실로 고위 공직자들을 불러 새 국정 기조의 동참과 협조를 당부하면 어떤가"라고 말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새로운 국정 기조에 발맞춰 처신할 줄 안다. 소위 '영혼이 없다'는 말은 관료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포용적 제도를 택한 나라는 성공하고 착취적 제도를 택한 나라는 실패한다고 진단했다. 자유시장경제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쏟을 수 있는 체제가 포용적이다.
탕평도 포용과 확장이다. 국정 성공의 동력을 얻고 정권 지지율도 상승 탄력을 받는다. 인재 풀이 좁은 한국에서 출생지나 정권의 친소관계를 따져 국민의 공복을 선택하는 건 속 좁은 판단이다.
[황인혁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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