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POINT] 실손청구 간소화, 의료계도 사는길

신찬옥 기자(okchan@mk.co.kr) 2023. 5. 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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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표류해온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가 국회 첫 문턱을 넘었다. 별 탈 없이 진행된다면 2년 안에 클릭 몇 번으로 진료비 몇천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전 국민이 받는 혜택으로 환산하면 연간 2800억원(윤창현 의원실 분석)에 달하는 금액이다. 일일이 종이서류를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문서 내용을 다시 입력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질 전망이다.

남은 문제는 보험사에 보낼 '진료비 관련 데이터'를 누가 모을 것인가다. '중개'인지 '중계'인지가 논란이더니 입법 과정에서 '전송대행기관'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국회는 기관 선정은 시행령에서 제정하기로 미뤘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험개발원, 의료계 자체 플랫폼까지 세 후보가 거론된다. 심평원은 의사들이 결사반대하는 중이고, 의사협회가 제안한 플랫폼은 아이디어 단계여서 구체적인 틀을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의료계를 3년간 취재한 경험으로 미뤄볼 때 심평원은 절대 불가능한 카드다. 의사들은 심평원이 진료비 내역을 들여다보는 것에 극심한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지난 2월 허창언 보험개발원 원장이 기꺼이 중계기관이 되겠다고 제안했을 때, 실손 청구 간소화 논의에 진전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보험개발원은 데이터를 관리할 능력이 있고, 자동차보험 관련 데이터를 오래 다뤄본 경험도 있다.

이쯤에서 짚어볼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보험사들은 왜 시스템 비용까지 지불해가면서 보험금을 더 받아가라고 안달인 걸까. 청구 간소화 시스템으로 모인 의료 데이터에서 창출할 수 있는 미래 가치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진료 데이터가 아니라, 특정 질환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보험사들의 목적이다. 이 데이터를 활용하면 맞춤형 보험상품 개발은 물론 전 국민 건강 관리와 질병 예방을 위한 정밀의료 연구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보험사들이 의료정보를 악용할 것"이라는 의료계 반대는 그런 데이터를 병원 컴퓨터에만 저장해두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진료 기록을 악용해 고객들의 보험 가입을 막는 데 쓸 수 있다지만, 한국에서 데이터를 다뤄본 사람이라면 그게 불가능한 구조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의료계가 생각을 바꾸는 것이 맞는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전향적으로 데이터를 개방하되, 보험사를 견제하며 제대로 활용되도록 감시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신찬옥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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