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주권' 골든타임 놓칠라 … 지금 규제법 만들 때 아냐"
토종 인공지능기술 보유 없인
사용자 데이터 해외 빠져나가
官주도 생태계 구축땐 부작용
민간투자 정책적 지원 의견도
◆ 위협받는 AI주권 ◆
국내 기업들이 각종 사업적 불확실성으로 주춤하는 사이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인공지능(AI) 기술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AI 생태계가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인재, 컴퓨팅, 데이터, 거버넌스를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속도감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관련 학계와 업계는 입을 모은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AI 개발 비용에선 국내 기업이 여러모로 불리하다. 일단 체격에서부터 밀린다. AI 개발 선두에 있는 네이버, 카카오는 덩치(매출액)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의 2~3%에 불과하다. 특히 구글, MS 등 빅테크는 올해 들어 1만명이 넘는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면서도 AI 분야에는 막대한 투자를 하며 새로운 AI 질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거센 공세로 인터넷 시대에 어렵게 지켜낸 '포털 주권'을 AI 시대에선 내줘야 할지 모르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미국 빅테크와 국내 토종 정보기술(IT) 기업은 체격부터 달라 AI 주도권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국내 AI 생태계가 외산에 잠식될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AI 기술 개발 및 법제화' 간담회에선 AI 관련 규제 법제화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은 규제보다 지원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은 "자체 초거대 AI 기술을 보유하지 않으면 모든 사용자 데이터가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며 "AI 기술 개발은 초기 투자뿐만 아니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해 파격적인 형태의 국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규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인공지능데이터 PM은 "유럽에는 빅테크가 없기 때문에 방어할 수밖에 없다"며 "AI 통제가 심한 유럽 방식을 벗어나 한국이 치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형 KT AI 사업본부 초거대AI 담당은 "글로벌 빅테크가 이미 고성능 초거대 AI를 개발한 상황에서 법률을 제정해 데이터 활용을 막아버리면 후발주자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외에도 AI 주권을 지키기 위해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산업계와 학계가 AI 기술 개발을 위해 역량을 한데 결집할 판을 정부가 깔아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인프라 접근성 부족을 호소하는 학계가 한 몸처럼 움직여 선제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는 수조 원의 자본을 굴리는 명문대학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턴이나 리소스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문화가 정착돼 있고,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들만의 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과 대학이 산학협력 기관을 설립하면 우수 인재를 끌어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정원을 늘리고 인건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마중물이 돼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AI 개발 비용 절감을 견인할 고성능 컴퓨팅 기술 국산화를 위해서도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산이 부족한 국내 벤처기업이 국산 인프라를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대기업도 국산 인프라를 시험해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스스로 수요처가 돼줄 수도 있다.
한편 지나친 정부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생태계 구축 중심은 민간이 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글로벌 AI 격전장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주도 투자는 독이 될 수 있다"며 "민간 AI 투자를 장려하고 AI 기술 수출을 노릴 수 있게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수민 기자 /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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